뭔가 힘든 일이 눈 앞에 다가오면, '아냐 그래도 그때보다는 낫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상쇄시키는 방법이다. 어느 날, 멍하니 걷다가 다시 힘든 일이 생각이 나서 어느 때처럼 그래도 한 달 전의 그 일보다는 낫지, 하고 털어내려는데 좀 이상하다.
아무래도 이 방법은 잘못되었다.
이래서는 내 인생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그저 괴로움, 많이 괴로움 그나마 나은 괴로움..... 괴로운 일들로만 가득 차게 된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이지만 웃을 일들도 적지 않았기에 살아왔다. 공부하다가 집중이 안 되거나 힘들면 당 충전을 하거나 한숨 잔다. 그런데 왜 나는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위로하고 있는 거지? 행복한 일이나 행복할(예정인 미래의 어느) 일로 상쇄하는 게 맞지 않나?
나는 괴로움에 중독되어 있었나 봐.
일부러 괴로운 기억을 찾아서 그 안을 헤매었다. 거기서 끝장을 내고 , 교훈을 얻으려고 했다. 괴로운 경험을 했으니 거기서 교훈이라도 얻어야 덜 억울했다.
그렇다. 뭐라도 얻고 싶어서, 보상받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견디기 힘든 일이 생기면 그다음 일은 무조건 좋은 일이어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그리고 20대에 들어오고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우울증에 들어간 바람에 당연히 가끔 찾아오는 평화로운 마음 상태가 낯설었다.
그래서 계속 내 인생 중 괴로운 부분을 일부러 더 들춰내서 쳐다보곤 했다. 마치 그 우울한 기억 또는 우울 그 자체인 덩어리와 내가 1:1 맞장을 뜨면 이길 수 있다는 듯이. 그 기억에서 무언가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사실 우울은 의식할수록 날뛰는 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는 게 좋다. 그러니까.... 나의 방법은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정해야 한다. 우울해(海)를 한 번에 말려버릴 힘은 고작 육지동물 중 하나인 나에겐 없다는 것을. 가능하다면 튜브라던가 하다 하다 호흡기라도 갖고 필사적으로 공기를 찾아야 함을.
나는 조그마한 행복을 찾고 만족하면서 눈 앞의 일상을 살아가는데 서투르다. 항상 과거의 힘든 일에서 도망쳐서 미래의 즐거울 일정(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여행을 간다는 일정 등)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살았다. 전력질주만 있었기 때문에 뛰고 있는 순간 부는 기분 좋은 바람이라던가, 어떤 풍경을 지나치고 있다던가 전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우울증과 함께 멈춰있다 보니까 알았다. 지금 어떤 풍경을 지나가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 어떤 바람이 나에게 부는지, 그 바람이 기분이 좋은지 아니면 별로인지... 이런 것들을 집중해야 우울에서 나올 수 있음을. 나는 과거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니라 우울과 여러 생각들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미래의 좋은 일을 수능처럼 디데이를 세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디데이들 하루하루를 내 삶으로 여기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괴로움을 행복으로 상쇄시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적어도 괴로움 안에서 또 괴로움을 캐내는 일은 좀 적당히 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이 결론이 나지 않는 감정과 절망과 자책과 생각들을 공기처럼 생각 없이 마시고 내쉰다. 지금 내 손에 있는 조그만 숟가락 하나로 우울해(海)를 전부 퍼내려고 하지 말고 그 숟가락으로 밥이나 퍼먹자. 날씨가 따뜻해졌으니 아이스크림을 퍼먹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