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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y 29. 2019

조금 더 세련된 반항.

사이다는 없다. 드라마가 아니라 남의 인생이기에.

공대에 여학생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팀원 중 몇 명이 나를 무시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소하게는 인사를 무시하는 것부터, 말할 때 자르기 끼어들기 등. 심하면 회의 때 나를 빼놓는다.  그중, 내가 낸 아이디어로 팀원들의 의견이 굳자 갑자기 “이건 철경 씨가 모르는 분야니까”하고 나의 스승인 척을 자처했던 팀원도 있었다.


이런저런 일로 나는 이 일 말고도 힘들고 버텨야 할 일들이 많아서 너덜너덜하다.  그런데 진짜 별 이상한 사람들이 또 나를 무시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꼴을 보니까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이건 은근하고 애매한 서열 나누기. 큰 트러블에는 나름 올바른 대처를 하는 편인데 이렇게 애매하고 하나하나 집기가 힘든 것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참 모르겠다. 아직 20대 중반인 내가 모든 트러블에 대해 능숙할 리가 없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이 연습할 것이고 이것도 그런 기회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시작해보자.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시작은, 나 자신을 다시 알아보는 걸로 시작하였다.

반성이 아니다. 반성할 만한 일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재수 없게 날 괴롭히는 건 옳지 않다. 그 사람들 입장이 아니라, 내 입장과 나 자신을 다시 확실하게 알아보았다.

뱅크시 전시. 나를 가볍게 해 주는 말들이 많았다.



1.     원인은 아마 나 자신.


10명 중 7명은 나에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날 이유 없이 싫어하고 1명은 좋아한댔나? 숫자가 이게 나?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 저들이 저러는 건,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 보아 나의 존재 그 자체이다.


나는 먼저 시비를 거는 성격도 아니고 그 정도로 남에게 관심도 없다. 그런데 가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에게 서열을 똑똑히 보여주겠다며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다.

과학고를 갈 정도로 똑똑한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만약 인도를 걷는데 뒤에서 트럭이 달려오는 느낌을 받잖아? 그래서 뒤를 돌아보면 네가 있어”


아마 나는 트럭 같은(?) 분위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그들을 위협했나 보다.(나의 이런 기질은 또 따로 글을 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발목 잡힐 행동이나 말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껀덕지가 없는 나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팀에서는 내가 막내이다. 그리고 확실한 의도를 갖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은 나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러면 많이 본 패턴이다. 그냥 내가 맘에 안 드는 사람이다.

2.     나는 트러블을 원하지 않는다.


적어도 도발할 생각은 없다. 나의 목적은 적당히 이 사람들과 지내면서 몇 달, 몇 년이 걸릴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거지 그들에게 복수를 하거나 약 올릴 생각은 없다. 그 사람들은 정성을 쏟을 정도로 중요하지도 않고... 그러나 이렇게 애매한 괴롭힘으로 계속 힘들어할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3.     나는 항상, 문제를 가볍게 대했을 때 맘에 드는 결과를 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버티기 싫으면 도망쳤다. “하하! 싫어!”하면서. 급식이 맛없으면 담을 넘었고, 선생님과 추격전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다음 날 또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를 가서 선생님들이 어처구니없어하였다. 교복은 엉망으로 입어도 공부는 바르게 했다. 양아치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내가 강해서가 아니다. 그 문제를 별 것 아닌 가볍게 대했기 때문에 위트 있게, 통쾌하게 살아왔다. 이게 나의 방식이겠지.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방식.



그래, 이렇게 가자.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들에게 말을 많이 걸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없던 친화력을 모아서 말을 건건 아니고, 평소처럼 그냥 할 일 하면서 덤덤하게 말을 걸었다. 항상 나는 그들이 내 인사를 무시하니까 말을 걸지 않았다. 이번엔 슬쩍 보고, 내 할 일을 하면서 가볍게 말을 걸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안녕? 나 여기 있어.
헬로우!!

팀원이 밥을 먹고 왔을 때

 

나: “뭐 먹었어?”(할 일하는 손을 멈추지 않고)
팀원 1 :“어? 어… 곰탕”
나: “맛있었겠네?”
팀원 2: “야 어디서 먹었어? 근처에 맛있는 곰탕집 어디 있냐? 철경이 그거 먹어봄?”

~이렇게 시시껄렁한 대화로 가벼워지는 분위기

내 인사를 무시할 때

나: 팀원 3아, 내 인사도 좀 받아주라.
팀원 3:아하 미안해 인사했어?(의도는 없는데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 3. 의도가 없기에 보통 바로 사과한다. 사실 착하다)
나: 너 예전에 학교 계단에서 내가 인사한 것도 무시하더라 몰랐냐?
팀원 3: 진짜 몰랐어 하하 미안해ㅠ
팀원 4 그 계단에서 만났어? 그 계단 이번에 수리 어떻게 한데~

~또 다른 얘기로 시시껄렁하고 가벼운 분위기

회의 때 나를 빼고 얘기할 때.

(아까부터 하고 있던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서)
나: 뭔데? 이거 나도 들어도 돼?
팀원 5: 네가 못 들을게 어디 있어.
나: 팀원 5를 부르길래 하하.
 팀원 6: 아냐, 네가 뭐 하고 있는 것 같길래~


중요한 건, 태도는 예전 그대로이지만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날 무시할 수 없어! 가 아니라, 너도 나도 서로를 무시할 수 없어~ 그건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사실처럼 당연한 거야. 네가 아무리 아등바등해도 바꿀 수 없는 당연한 사실이야.  그래도 이건 속으로만 생각하고 상대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하진 않는다.  굳이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진을 빼야 하는가? 어차피 내일이면 해가 뜰 텐데.

지금 우리는 무지한 사람들에게 지구가 돈다고 목숨을 걸고 알려줘야 하는 갈릴레오가 아니다. 모두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그냥 그게 맘에 안 드는 사람이 내 옆에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괜한 고집을 부리는 중이다. 그 사람에게 말해보았자 내 입이 아플뿐더러 그 사람이 나를 더 심하게 괴롭힐 수도 있다. 억울하지만 하필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 그러면 그냥, 아이고 고생하네. 거기 덥지 않아? 여긴 그늘이야~ 그늘에 있으면 시원해~ 내일도 해가 뜰 텐데 난 이제 선크림 바르려고~ 너도 좀 줄까? 가 나의 선택이다. 그 사람이랑 계속 같이 있을 수 밖에 없으니까.




인생에 사이다는 없다. 우리의 인생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가끔, 남의 인생을 자신이 보는 드라마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함부로 훈수를 두고 고구마, 답답이라고 비난한다. "좀 더 세게 말했어야지~"라고 나에게 얘기한 사람 중, 실제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본인이 못 하는 통쾌함을 남의 인생에서 찾지 말자. 우리에겐 소설과 드라마라는 좋은 볼거리가 있다. 드라마와 다르게 남의 인생은 그 사람이 저지른 만큼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하며, 운이 안 좋으면 언제든 더 안 좋은 일을 겪기도 한다. 아 작가가 너무하네~같은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각자가 만족할 만큼만 해결하고 움직이면 된다. 각자의 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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