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l May 12. 2019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이'가 아니라 '잘(good)'

무슨 감정이든 다루기 힘들지만 가장 힘든 건 '분노'이다. 짜증도 잘 내고 생색도 잘 내는데, 화는 잘 내지 못한다. '자주'는 내는데 '잘'은 못 한다. 올바르게 화를 내는 방법이 있을까?



나는 절대로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일단 화가 바로바로 나는 게 아니라 나중에야 스멀스멀 올라와서 화낼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그리고 말이나 행동이 먼저 튀어나오기 때문에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내가 화를 못 내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정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자기 시간 귀한 줄 알고 남의 시간은 함부로 대하는 사람.


에너지 뱀파이어, 약속 시간 늦는 사람, 잠수 타는 사람…. 전부 이런 유형의 사람에 해당한다.(현재 에너지 뱀파이어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 정리하고 바로 올리겠어요!) 어쨌거나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는 주제에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목숨을 거는 꼴을 보면 뒤집어진다. 질투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소중히 대해 줘!... 가 아니다. 적어도 같은 인간다운 최소한의 배려는 하란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왜 싫어하냐면, 화를 내는 방법을 잘 모르는 내가 화가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큰 혼란에 빠진다. (아무리 내가 생각해도) 잘못은 저 사람이 먼저 했고, 나도 화내기 싫은데 저건 잘못이고, 기분이 너무 나쁘다. 참을 만큼 참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다.

그런데 나만 참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나댐과 나섬의 차이는 수습을 못 하거나/하거나이다.

 이를 실감한 일이 있었다.

멀리 유학을 가는 친구를 위해, 자주 모이는 사람들이 송별 파티를 하겠다고 했다. 그중 가장 열심히 투표를 올리고 사람들의 투표를 장려(?)하고 뭐 어쨌거나 이짓저 짓하느라 내 카톡을 +99로 만들어버린 A는 예정일이 다가오는데 갑자기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느낀 나는 일정을 확실히 정하자며 다른 사람들과 투표를 다시 한번 올렸고 대다수가 불참. 무엇보다 읽고도 투표도, 카카오톡 메시지로 답장도 하지 않는 A를 보니 화가 났다.

아니, 수습할 수 없으면 일을 저지르지 말아야지. 적어도 못 갈 것 같으면 그냥 미안하다고 불참하겠다고 하면 될 것을. 대체 송별회 주인공은 무슨 죄야? 자기가 일이란 일은 다 저질러놓고는!

이럴 때 나는 곤란해진다. 화를 낸다고 해도 내기도 힘든 상황. 게다가 아니꼬운 소리 하나라도 했다가는 유학을 가는 친구는 찝찝한 마음으로 여길 떠나게 되겠지.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자, 이 감정을 티 내도 괜찮다고 한다. 대신 너무 격하지 않게. 정중하게. 그때 해답을 얻었다.

아, 나는 선빵은 안 때려.
대신 나와 내 사람들을 건들면 죽을 각오로 임할 거야.
이게 내 성질이구나. 난 이럴 때 화가 나는구나.


화를 내는 방법을 몰랐다.


화를 못 내는 게 아니라, 나의 화내는 방법은 너무나도 매니악했다. 일단, 내 잘못이 없고 상대방의 잘못만 있을 경우를 기다렸다가 화를 냈다. 사실만 얘기해도 상대방은 입을 다물었다. 그동안 나는 화를 내지 않고 입을 꾹 닫고 있었다는 얘기다. 상대방은 갑자기 닥친 시련이지만 나에겐 기다렸다가 드디어 온 시간. 기다렸던 만큼 발달된 비꼼과 압박은 상대방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고, 그렇게 항상 연락이 끊겼다.


그럴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잘못한 거야? 분명히 내 잘못은 없는데, 상대방의 잘못이 이렇게나!.... 많은데.

 

이제 알았다. 나의 잘못은(아직 잘못이라고 말하기엔 자존심이 좀 상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관계를 맺으려고 했음을.


나 :저는 보통 제가 잘못한 게 없을 때, 그러나 상대방이 잘못했을 때 화를 내요.

듣던 사람: (엄청 놀라면서) 그런 일이 가능해요?!


그렇다. 가능은 하다. 나처럼 관계에서 엄청나게 긴장을 하면서 스스로를 미친 듯이 갈고닦으면. 난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고 싶었고 흠잡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오히려 나의 흠집이 되었다.


 미성숙하다는 소릴 듣기 싫어서 불편해도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고, 섭섭해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내가 모자라다는 소릴 듣기 싫어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화를 낸 기억 중, 참다가 갑자기 화를 낸 기억보다 바로 반격(?)을 했던 기억이 훨씬 더 깔끔하고 반성도 덜 하고 있다. 선빵을 맞은 것 치고는 나름 잘 대처했고.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의 힘을 믿는다. 요즘은 실수를 하는 나를 더 우쭈쭈 해하고 있다. 그러려고 한다.

신기하게 올바르게 화를 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의 중심이었다.


중심은 잘 잡되, 좀 더 풀어줘야 한다. 나도 충분히 잘못할 수 있음을.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상처 줄 수 있음을. 물론 어렵다.

+

결국 단톡에서 유일하게 투표를 하지 않은 A에게 한번 더 투표를 장려했다. A를 언급하면서,




그러자 아무 말도 없이 불참에 투표를 한 A. A가 갑자기 그런 태도를 보이게 된 건 그만 아는 이유가 있겠지. 확실한 건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다. 집단지성으로 이것저것 예상하고 예측해보았자 결국 당사자가 없으면 다 오답이다.

 A는 이번에 나에게 정중하게 바로 화를 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주변에 민폐를 좀 끼쳐도 된다는 것도. 감정을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드러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음을. 그러나, 적당해야 한다는 것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