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어떠셨나요?"
병원에서 상담은 의사 선생님의 이 한마디로 시작한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했다. 꼭 말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제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 있었어요. 그건...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냥 투닥거리는 소리인 줄 알고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낮은 음성의 욕설이 들렸다.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바로 이해했고, 빠르게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 소리는,
밖이기 때문에 '내가 멀쩡한 척하느라 지금 참지만 집 안에 들어가면 두고 보자'의 욕설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가해자들이 전부 그랬으니까.
나는 일어나서 벽 쪽에 붙어서 창문 밖을 살펴보았다.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치매의 느낌이 났다. 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할아버지가 욕설을 지껄이며 얼른 문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닌지 문에 자신이 다다르자 겁먹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낮은 욕지거리가 들렸다.
"네가 아픈데 왜 나한테 소리를 질러... 이 xxx... 얼른 들어가..."
아주 별 거 아닌 이유다. 그러나 폭력범들은 전부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아내나 자식들을 죽어라고 패기 때문에 익숙한 패턴이다. 어떻게 하지. 도로명 주소가 얼핏 보이는데 신고를 해야 하나? 신고해야겠다. 전화기를 가지러 간 사이에 문은 닫혔고, 둔탁한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람이 맞는 건지, 아니면 위협을 위해 물건을 부수는 건지 구분이 안 갔지만 할머니가 겁먹고 있는 행위를 남성이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아니, 저 새끼가! 그러자 갑자기 옆 집에서 젊은 남성이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어머님, 어디 불편하신 건가요?
뭐야, 가던 길 가라고 너 뭔데
아뇨, 어머님의 소리가 들리잖아요. 신경이 쓰여서요. 상태만 좀 보고 가도 될까요?
건장한 남자라서 본인이 힘으로 밀린다는 걸 알았는지 중년 남성은 젊은 남성을 막지 않고 집 밖으로 나와서 다른 길로 갔다. 도망치면서도 계속 화를 냈다. "너 뭔데" "아주 몇 시간이고 기다리지 그래?" 뒷걸음질 치면서.
네, 아버님 일 보러 가세요. 어머님 들어가도 될까요?
젊은 남성이 안으로 들어가자 (아마 그 남성이 할머니를) 달래는 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소리와 무언가를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등을 토닥이는 소리도 들렸다. 어떻게 하지? 다음에 또 저런 일이 있으면 신고를 어떻게 해야 하나 미리 알아볼까? 아닌가 지금이라도 해야 하나?
분했다.
좋겠다. 만약 저 남성이 아니라 내가 나갔으면 나에게서 도망치진 안 했겠지. 최악의 경우 나까지 맞았을지도 모른다. 분하다.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났다. 독해져버린 할머니도 생각이 났다. 무슨 잘못이 있길래 우린 그런 가족이 걸렸을까. 왜 우린 힘이 없을까. 왜 저들은 그 힘을 그렇게 쓸까. 그 와중에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은 기가 막히게 잘 알아서 도망치는 꼴 하곤.
그 집은, 항상 라디오인지 티브이인지 모를 소리가 났다. 노래를 항상 크게 틀어놓았다. 사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릴 정도면 중년 남성이 할머니를 괴롭히는 소리를 내가 못 들었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 집은 노랫소리가 정말 컸다. 우리 집 창문을 다 닫아놓아도 들릴 정도로. 마치 남들에게 '우린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어요.'를 어필하듯이. 예전의 우리 집 같아서 구역질이 났다. 아버지에게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해도 다음날 친척들 앞에서 '불쌍한 척'하는 아버지 덕분에, 나와 동생은 항상 할머니나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아버지에게 태도가 그게 뭐냐"라고. 그리고 어머니는 다급하게 우리가 버릇이 안 들어서라고 해명했다. 죽는 것보다도 우리 가족이 남의 가족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싫었던 어머니였기에.
기이했다. 저 음악소리도 너무 기이해.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묻힐 정도로 크고, 신나는 음악소리다. 그런 주제에 저 중년 남성은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어왔겠지. 화가 난다. 이젠 우리 집에서 살고 있지 않지만, 저 집 덕분에 집에 들어가는 마음이 편치 않다. 집에 있어도 쉬는 게 아니다. 밖에서 조그만 소리만 들려도 놀라서 창문 쪽으로 달려간다.
"분노하세요."
올 초에 상담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다. 억울함과 비참함에서 멈춰있지 말라고. 저 '잘못된'행동을 보고 '분노하라고'.
"철경님이 분노할 힘이 있다는 겁니다. 자신의 상처를 남을 위해 마주할 수 있게 되셨죠. 그건 철경님만의 힘입니다."
내가 바뀐 것을 알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분명 무섭고 서러웠지만,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었다. 집에 돌아갈 때마다 그 집 문을 노려보면서 간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화를 하기 위해, 그 집 문을 똑바로 쳐다본다. 물론, 경찰이 그렇게나 미덥지 않은 것은 안다. 그리고 가정폭력의 특성상, 가해자의 폭력을 막는다고 해도 그 순간임을 안다. 그러나 계속 신고를 하면 그들도 심각성을 알겠지. 또 그 젊은 남성처럼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나는 무력하다. 그러나 살아남았다. '생존'이 얼마나 큰 힘인지 안다. 지금 이 분노는 사그라들까? 꺾일까?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의 분노는 한번 꺾였다가 다시 일어난 힘이기에. 그렇다고 내 삶을 이 분노에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나의 여러 힘 중 '하나'일뿐이다. 나는 분노할 일만 있는 게 아니다. 기뻐할 일도 있고 슬퍼할 일도 있고 허무해할 일도 있고 보람을 느낄 일도 있고... 하여튼 바쁜 인생이다. 과거의 상처가 나를 죽이도록 하진 않겠다. 그러나 내가 상처가 있기에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언제든 상처를 마주 보고 싶다.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