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건지, 시작한건지. 제주도 여행.
내가 참고한 책: '나 홀로, 제주', '제주 카페'-> 모두 나의 월정리 로망을 심어준 책들이다.
도움을 얻은 어플: 카카오 맵, 제주 버스정보
"제주도 바다는 달라. 꼭 봐야 해"
"헐! 어떻게 저렇게 맑지! 와 말도 안 돼. (엄마 한태 영상통화를 걸었는데 동생 놈 얼굴이 나옴)으악 네가 왜 나와! 어, 엄마랑 아빠 보여줘. 바다 보여? 이건 진짜 직접 봐야 해. 말도 안 돼. "
1. 데미안 완독 및 필사
2. 이어폰 사용 최대한 금지.
3. 시간이 쫓기지 않기(시계 고장 나면서 강제로 완료)
4. 인터넷과 카카오톡 최대한 보지 말기.
이 4가지 모두를 가능케 한 책다방. 월정리 근처에 인스타스러운 카페가 많은데, 사람도 그나마 적고, 혼자 온 사람들도 많으며 고양이들이 안에도 밖에도 있다. 7000원을 내면, 음료 한잔과 함께 시간제한 없이 이 안에 있는 책을 무한정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데미안보다는 다른 책을 읽게 되었다. 참고로 커피는 드립밖에 없다. 커피 외의 다른 음료들은 많다. 그러나 훌륭한 커피였다.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소품도 판다. 귀엽다.
책은 크게 두 장소에 진열되어 있는데, 한 곳은 읽을 수 있고 한 곳은 파는 책이라서 구입 후 읽을 수 있다. 얼마나 있다갈지 알 수 없기에 소설은 읽고 싶지 않았는데, (중간에 흐름 끊기니까)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온 두꺼운 소설이 있었다. '츠바키 문구점'. 할머니를 이어서 대필가를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새삼 글씨와 편지의 중요함과 소중함을 느꼈다. 예전에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 어떤 편지지에 어떤 엽서에, 어떤 색의 어떤 펜으로 적을지를 각자 열심히 고민했던 기억도 났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피곤한 상황에서 머리를 깨워주는 차가운 드립 커피와 책과 글, 시간이 멈춘 공간. 훌륭하다.
밖에 고양이가 많다. 나는 그냥 화장실을 갈 뿐인데 다들 놀란다.(화장실이 밖에 있다.) 안의 고양이는 흰색 한 친구뿐인데, 항상 밖에 가고 싶어 한다고 한다. 내가 고양이들이 잘 따르는 편인데 이 친구는 내쪽으로는 오지도 않았다. 슬펐다. 이제 해가 지기 전에 밥을 먹으러 가자.
그리고, 조금 외진 곳에 있고 가는 길이 5분 정도 어둡고 아무것도 없기에 혼자 갈 거면 해 지기 전에 가기를 추천한다. 좀 무서웠다.
집에 왔다! 월정리 근처에서 묵고 싶었으나 그 근처 1인실은 전부 예약이 되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묵게 되었다.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은 분리되어있으나 각 화장실은 공동화장실이다. 나는 하숙도 했기에 그다지 거부감은 없었지만, 혹시 예민한 사람들은 참고해주시길. 혼자 묵기에 아주 좋다. 동네는 조용하고, 불을 끄면 전등이 너무 예뻤다. 전등도 끌 수 있다. 안에 고데기와 드라이기도 있다. 그리고 전기장판이라서 엄청 기분 좋게 잘 수 있다.
조식은 8시에서 9시 사이에 주시는데, 시간을 말씀드리면 맞춰서 준비해주신다. 문자로는 굉장히 귀여우셨으나 실제로는 수줍은 매력을 뿜으시는 사장님의 밥은 굉장히 맛있었다. 참치마요가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일 줄은 몰랐다!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서 요요무문을 갔다. 사람이 많아지기 전에 좋은 자리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싶어서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다. 가는 길에 고양이가 많았고 가게 쪽에도 고양이 급식소가 있어서 고양이가 많다. 놀라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다행히 첫 번째 손님으로 좋은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소품도 굉장히 많이 판다. 여기서 음식값보다 소품 값을 더 치른 듯. 고양이 스티커와 메모지, 파우치, 엽서 등.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카푸치노의 거품은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다. 베어 먹어야 했다. 여기가 디저트가 맛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아침으로 당근케이크와 카푸치노! 바다를 보면서 책도 읽다가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는 카톡과 메일도 받고. 전화로 일도 처리하고. 내 인생의 회의감도 들고, 그러다 보니 데미안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 다만 사람이 많아지면 가게가 넓지 않은 만큼 조금 정신없어진다. 그러나 바다만 뚫어져라 보면서 자신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하자.
밥을 먹고 세화 해변 카페거리 쪽으로 쭉 걸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맑지 않고 흐린 날이어도 바다는 운치 있다. 제주도 바다라서 그럴 것이다. 세화 해변 쪽도 유명해져서 카페가 굉장히 많기에 굳이 미리 알아보지는 않고 끌리는 곳에, 대신 사람이 많지 않을 구석으로 가기로 했다. 비가 와도 운치 있는 건, 커피, 음악, 제주도 바다 이 세 가지뿐이다.
주거지 쪽에 있는 카페. 굉장히 예쁘다. 느긋하게 있고 싶었지만 감기 기운 때문에 오래 못 있어서 슬프다. 책을 좀 읽다가, 카페도 구경하다가, 조용히 노래를 듣다가 왔다. 다시 가면 정말 느긋하게 있고 싶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에 일찍 돌아왔다. 그런데, 이런! 원래 게스트하우스 근처의 분식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컵라면을 먹었다. 너무 슬프다. 굉장히 기대했는데. 제주도에서 마지막 만찬이 컵라면이라니 분하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나가야 하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컵라면을 잘 못 먹었는지 배가 아파서 잠을 좀 설쳤다. 다행히 게스트하우스 공동공간에 응급상자에 약이 있어서 먹고 잤다.
뭐야, 비 온다더니 결국 마지막까지 비는 맞지 않았다. 우산도 피지 않았다. 심지어 마지막 날은 이렇게 개었다. 하늘이 도왔나 보다.
1층에는 먹을거리들, 2층에는 소품샵이 있는 기념품 가게. 굉장히 좋은 점은, 공항까지 픽업 서비스를 해주고, 여기서 택배를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커피도 살 수 있다. 집으로 보낼 택배를 보내고, 몇 시까지 픽업 서비스를 부탁드리고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잠시 앉아있었다. 그리고 조금 반성했다. 아니, 기념품 가게에서 여행 내 내보다 돈을 많이 쓸 수 있는가....?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맑아지는 하늘을 보고 제주공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모든 비행기가 지연되었고 내 비행기도 지연되었다. 하필 비행기가 점심시간대라서 배고파 죽는 줄 알았다. 진짜 제주도 빼고 다 비 오고 강풍이 불었나 보다. 그래도 어찌어찌 집으로 돌아갔다.
몇 달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도, 전부 허무해했다. 무언가를 깨닫고 오거나 자신이 바뀔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없었다고. 하물며 2박 3일의 제주도 여행에서 뭘 기대할 것인가. 게다가 나는 대담한 사람이 아니어서 10분 간격으로 현실로 돌아오곤 했다. 카카오톡도 어쩔 수 없이 많이 보고, 메일도 보고, 걱정도 하고, 머리도 쥐어뜯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주도에 있는걸!
물론 무언가 들이 쌓여서 나중에 드러나겠지. 절대로 의미 없는 일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에 별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큰 의미니까. 여행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끝내고 현실에 적응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많은 힐링이나,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제주도에서 맛난 것을 먹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히 얘기할 수 있다.
"제주도 바다는 진짜야. 직접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