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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Feb 21. 2020

인간은 하찮아도 귀엽지 않다.

하찮지만 귀여운 건, 고양이나 강아지 등등뿐이다.


"아니, 나라고 걔가 예쁘겠니?"

여러 팀 프로젝트, 졸업 프로젝트까지 팀 프로젝트로 했다 보니 팀원을 뒷담 할만한 속상한 일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나 그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꼭 한소리를 듣는다. 왜 온 힘을 다해 그 팀원들에게 복수하지 않았냐, 그런 내용이다.


내 옆에 있다면 세계가 네 발 밑에 있을걸?

"팀원 이름 빼버려!"

예전에 사이다 광고에 "그럼 선배님 이름도 뺄게요?"가 있었다. 조별과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 광고의 그 문장은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팀원의 이름을 뺄 수 있는 권력이나 위치를 갖는 경우는 잘 없다. 심지어 '선배'를 뺀다니. 현실적이라서 미안하지만, 그러면 교수님께 상황 설명, 팀원들의 의견 일치, 소수과의 경우 계속 그 팀원을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까지.... 할 것이 많아진다. 팀 프로젝트를 많이 해 봤기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얽혀있는지 잘 안다. 씁쓸하다.


팀원 중 한 명이 끝에 다다라서 자신의 이름을 빼고 진행해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한 것이 없어서 미안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더 하기 귀찮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대표학생이었던 나와, 다른 팀원들은 그의 이름을 빼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뺐어야지!!"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우리는 빼지 않았다.


왜냐고?

그의 이름을 빼봤자 우리에게 좋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들어갔다고 우리가 나빠질 일도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프로젝트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갑자기 뺀다면 교수님과 얘기도 해야 하고, 쓴소리도 들어야 하고, 이미 진행된 일이기에 뭐라 하기도 귀찮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랬듯 그가 앞으로도 이 프로젝트에서 무언가를 하지는 못한다. 빠진다고 우리 프로젝트가 휘청대거나, 더 할 일이 많아진다거나,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즐겁거나, 같이 못 해서 아쉬운 사람도 아니었다. 즉,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었다. 

할 것도 많은데 뭐하러 이름 빼는 수고까지 해 줘야 하는가? 정 빼고 싶으면 본인이 교수님께 얘기하고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러면 그 팀원의 이름이 올라가서 걔가 덕 보지 않겠냐고? 


그러던가....

어차피 우리 이름은 올라간다. 그 팀원의 이름이 있던 없던 우리 이름은 있고, 이 프로젝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팀원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설명하라고 했을 때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 자신의 지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했다는 것으로 그 팀원이 나보다 취직을 잘하거나 좋은 무언가를 얻었다면 재수는 없겠지. 그러나 그뿐이다. 그의 앞길을 방해하거나 신경 쓸 에너지도, 이유도 나에겐 없다.


팀원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건 모른다. 그 이후에 우리가 만나도 그 팀원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말 그대로 모두에게 이미 '하찮아진' 존재였다. 이렇게 남을 바에야 차라리 '싫은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관계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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