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이 까먹기 전에 호다다다닥 적는 글.
아, 곧 개강이구나.
아주 예전에 쓴 글들이 요즘 라이킷을 받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뒤로 미뤄졌지만, 개강은 개강이다. 개강이 두려운 건 비단 신입생들뿐이 아니다. 나 또한 항상 무서웠다. 친구가 없었고, 공부는 어려웠으며, 앞으로 몇 달을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예전에 오티 관련 글도 어디선가 쓴 적이 있는데, 요즘 재조명받고 있더라. 개강 시즌이 되자 여러모로 혼란스럽나 보다. 그래서 까먹기 전에 내가 졸업까지 하면서 느끼거나 알게 되었거나... 그런 것들을 주저리 적어보고자 한다. 여러 곳에서 적은 것들을 다시 정리했을 뿐이지만. 브런치는 1020세대는 잘 없지만 혹시나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1. 오티 가야 하나요?
나는 신입생 때 딱 한번 갔다. 오티를 가야만 친구가 생긴다, 이런 말이 있었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재학생/졸업생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의견이다. 나의 경우는 오티 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서 혼자 다녔고, 사실 몰래 울기도 했는데 어찌 졸업 때까지 어찌어찌 잘 살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오티 참석을 고려해보자.
- 오티에서 교수님, 수강신청, 수강과목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
- 안 가면 불안한 경우
오티는 가서 손해 안 가서 손해, 이런 건 아니다. 그러니까 정 찔리면 가길 권한다. 대신, 오티를 갔다고, 못 갔다고 4년이 좌우되는 건 아니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가주었으면 좋겠다. (소수과의 경우는 좀 다를 수도 있다. 나는 대형과라서 오티 때 본 사람들 졸업 때까지 한 번도 못 마주쳤다.)
대신! 술로 센 척하지 말 것. 흑역사는 둘째치고 사고 날 수 있다.
+ 엠티 가야 하나요?
죄송합니다. 저는 아싸라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인싸분들의 경험, 듣고 싶습니다. 지금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고요? 땀입니다 하하.
2. 고등학교 친구 vs 대학 친구
개인적으로 제일 쓸데없는 고민이자 논쟁거리라고 생각한다. (굳이 따지자면 넓고 얕은 관계 vs 깊고 좁은 관계. 전자가 대학생활에서는 여러 정보를 얻기 편하다. 나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때는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왜냐면 확실히 비교가 되기 때문!
다른 상황의 다른 사람들이니까 비교가 된다. 고등학교에서는 또래 중 동갑 하고만 다녔다면 대학 친구는 선후배, 그리고 동기에서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며 교수님들과 많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학과도 있으니 당연히 혼란스럽고 실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히 대하시고, 사람마다 다르니까 굳이 ‘얘는 대학 친구라서 이 정도는 친해질 수 없겠군’ 뭐 이런 프레임이나 고정관념은 버려주시길.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학을 같이 가지 않는 한, 당연히 멀어진다. 여러분들은 이제 고등학교 동창들과 하루에 한두 번 카톡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로만 겨우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누군가가 연애를 시작한다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낯선 모습을 보여주고 보게 되면서 거리감을 느낄 것이다. 혼자 타지로 대학을 왔다면 당연히 더 멀어지겠지. 대학 친구들은 적어도 20년 정도는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가치관을 형성시켜서 만났으므로 얘기를 하다가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서 거리감이 느껴질 것이다. 모두 나는 다른 사람, 나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그러니 이 외로움은 당연하다.
3. 나는 00이 될 수 없다.
여전히 그런 것 같은데, 나도 새내기 때 ‘싹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들 그런 사람만 원했으니까. 싹싹한 사람이 잘못이냐고?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으며, 주위의 사람들은 전부 00인데 나 혼자 ㅁㅁ일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다. 나도 2,3학년 때까지 남들 다 사귄다는 대학 친구, 못 사귀어서 힘들었다. 외로움보다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날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삶의 방식은 다 다르다. 될 수 없는 00이 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00이 될 수 없는 자기 자신이라도 괜찮다는 말이다.
4. 타지로 혼자 대학을 온 경우, 여러 동아리 활동을 추천한다.
많은 동아리를 들어도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동아리에서 활동을 중시하며 오래 있기를 추천한다. 동아리에서 친구 만들기가 우선이 되면, 활동을 지속하기 힘들다. 그리고 어지간히 도덕적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동아리를 꾸준히 나가면 간단한 얘기를 할 지인 정도는 생긴다.
나의 경우 학교 동아리는 다 때려치웠지만, 다른 외부 활동을 하면서 몇몇과 친해졌고 서울로 대학을 다니거나 취직한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다시 연락하며 인간관계를 형성하였다. 나는 일주일에 사람을 한두 명 만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하루 종일 사람이 옆에 있기를 바란다면 학교 동아리를 추천한다. 흔히 ‘동방 유령’이라고 하지 않는가. 동방에 가면 항상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되어도 괜찮다.
5.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어깨의 힘을 풀자, 주변에 사람이 생겼다.
나는 정말,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는데, 친구를 만들려고 했을 때는 다들 나를 피했으며 오랜 간 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친구는 생기는 것이고 나만이 긴장하고 노력해봤자 상대방이 피하면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되어서, 어깨의 긴장을 풀고 편하게 다녔다. 체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졸업식에 찾아오겠다는 타대생 친구들이 생겼다. 물론 졸업식은 못 했지만, 이런 관계가 생길 줄은 몰랐다. 학교와 과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즉,
정답은 없다.
남들 다 이렇게 한다는데 나는 안 그래서 어떻게 하지? 당연히 그런 불안감이 드는 시기이다. 그런데 정답은 없다. 어깨가 조금 가벼워도 괜찮다.
6. 타지에서 자취나 기숙사 생활을 한다면, 부자가 아닌 한, 좁은 방일 것이다. 산책을 나가고, 자신만의 공간을 밖에서 만들자.
나는 서울을 정말 싫어했는데, 졸업할 때쯤 되자 내가 내 것으로 만든 공간과 시간이 많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 고양이가 npc처럼 있는 산책로
- 마음이 복잡하면 가는 카페 1
-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으면 가는 카페 2
- 작업을 하기 좋은 카페 3
- 맛있는 커피를 사거나 내가 내려서 책을 읽으러 가는 도서관
- 우울할 때 꼭 먹으러 가는 맛있는 밥집
-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오프 모임 찾아보기
이런 식으로 정말 나이기에 정해지는 순간과 장소들을 쌓아놓자.
7. 이건 여담인데 여학생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
남학생도 마찬가지긴 한데, 웃는 얼굴 강박은 여학생이 갖는 경우가 많다. 나는 여학생이 적은 과에서 여학생이었기에, 팀 프로젝트를 하면 항상 막내에, 유일한 여자였다. 언제부터인가 싹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계속 웃고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 지쳐서 웃길 때만 웃기로 했다. 그러자 나의 프로젝트 생활은 훨씬 쉬워졌다. 굳은 표정을 지으라는 것이 아니라 굳이 안 웃긴데 억지로 웃는상을 만들지 말자. 그냥 웃을 일을 만드는 편이 낫다.
힘들면 힘들다고 인정하자. 난 그게 가장 힘들었다. 힘들면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하고, 아무나 붙잡고 그냥 얘기하고, 울고, 소리지르자.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 다 좋다는 대학생활, 나는 좀 다를 수 있다. 누가 그래 대학만 가면 자기 세상이라고. 대학을 가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나는 작음을 실감하게 되고 위축되겠지만, 그게 맞다. 여러분의 세상은 여러분이 정하는 것. 다시 오지 않을 20대 초반에 꽃만 흩날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인생도 있다. 울 일이 적기를, 울어야 한다면 마음껏 목놓아 울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