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너무 깊게 관여된 사람들이 날 지치게 만든다.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나는 좁고 깊게 사람들을 사귀었다.(다시 말하지만 의도했던 건 아니며, 이게 정답도 아니다.) 그렇기에 대학교를 오면서, 20대를 보내면서,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깊게 생각하며 깊게 관여하고 깊은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실수를 했다. 그리고 서로가 맞지 않으면 어느 한쪽이 아무리 열정을 내비치고 노력해도 쉽게 관계가 회복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연말이 되어 센치해진건지, 안 좋게 끝난 친구들이 몇몇이 연락이 왔다.
이미 늦은 사과였으나, 그중 몇몇은 '네가 너무 좋다'라며 나에게 여전히 깊은 친구로 남아있기를, 앞으로 계속 남아주기를 종용했다. 그건 폭력이었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가해지는 폭력. 상처를 준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을 스스로 을로 두는 관계가 오래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게 친구라는 공평한 관계인가? 서로가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 친구는 또 나에게 실수할까 봐 나와 있으면 살얼음을 걷는 기분일 것이고, 나는 반대로 그 친구가 그렇게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편해서 눈치를 보게 된다.
이쯤 되니, 다들 나의 상처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냥 어째서인지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좋게 작용해서 옆에 두고 싶을 뿐, 아무도 내가 그들을 질려하거나 거리를 두려는 이유에는 관심이 없었다. '앞으로 내가 잘하면 돼'라는 말로 나에게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도록 한다. 의도했던 아니던, 나에겐 그들이 나에게 준 옛 상처보다 훨씬 부담스러운 기대였다.
간단한 인사를 하며 단톡방을 나왔다.
간단한 이유였다. 그냥, 나는 갈 수 없는(안 갈) 약속을 그들이 내가 있는 단톡방에서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것이 서로에게 부담일 것 같아서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하며 나왔을 뿐이다. 그 와중에서도 내가 불편해했던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말하고 다닐지 예상이 되었다. 틀릴 수도 있지만 그 풍경이 그려졌다. 아 지쳤다,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이런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만큼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다.
이젠 교복 입던 시절도 아니니까, 꼭 모든 관계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 인정합시다, 우리.
우리 잘 안 맞는데, 잠깐 거리 둡시다. 우리에게 맞는 거리를 인정합시다.
이제 우리 마지막이야! 같이 선전포고를 한 것은 아니다. 모든 관계를 그렇게 모 아니면 도로 설정하기엔 지쳤다.
이젠 불편한 관계들에서는 ' 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 보니 멀어졌어'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만나기도 하고 또 멀어지기도 하고 그 순간순간마다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들의 내가 없는 순간순간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나 또한 그들이 없는 나의 순간순간을 응원하고 축복한다.
안녕, 한 때 함께 웃었던 모든 이들이여. 그 누구도 만남을 후회할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우리가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