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l Feb 26. 2020

토닥토닥 커피.

각성이 아닌, 나를 위한 tea time.

하정 작가님의 "이런 여행, 뭐 어때서"에서 나온 대화.
네 커피는 힘을 쓴 후에 몸을 풀어주는, 위로해주는 그런 느낌의 커피야. 하루를 시작할 때가 아니라 하루를 끝내고 마셔야 하는 거지

하루 끝에 카페인 마시면 잠 못 잘 텐데요.

집에 가끔 가면 여러 믹스커피로 허접한 커피를 만든다. 그냥 믹스커피를 달게 마셔왔던 엄마는 우유, 카누, 맥심, 가끔 휘핑크림 등으로 카페랑 비슷하게 만드는 집 커피가 신기하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만드는 커피는 '내린다'던가 '좋은 원두'라는 단어와는 아주 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커피이다. 유튜브나 트위터, 여러 서적에서 '집에서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커피 레시피에 아주 예전에 카페 알바를 했던 '정성'을 조금 쏟았을 뿐이다. 그 정성을 쏟는 과정에서 활력을 얻었고, 작은 취미가 생기기도 했으니, 나에게 커피는 말 그대로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이다.


 

하루를 여는 커피였는데, 신기하게 "하루를 끝내고 마시는 느낌"이라는 청개구리 같은 답변을 들었다.

하루를 여는 커피는 상상하기 쉽다. "카페인이 내 뺨을 때린다" 혹은 "당과 카페인과 함께라면 오늘 하루도 두렵지 않아!"이런 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커피를 즐기는 여유는 없어졌다. 다들 살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내가 집에서 타 온 커피는 옆사람으로 하여금 '사약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진했다.

예전에는 우유에 그냥 카누를 탄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는데. 이제는 비싼 커피를 마셔도 그냥 카페 대여비 같은 느낌으로 마셨다. 그런 나인데 하루를 끝내는 커피라고? 내가 만든 커피가?

그냥 저 재료들을 시의적절하게 다 때려 넣으면 핫코초 완성이다.(물론 우유도.)
엄마의 말은 한 달이 지난 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짬 내서 취업준비를 했으나 결국 취업하지 못하고 졸업이 확정되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붕떠서 무엇이든 너그럽게  할 여유가 생겨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서 '리얼 핫초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커피와 만드는 방법은 딱히 다르지 않다. 

그렇게 여러 유튜브와 내가 알던 지식을 그냥 쏟아부어서 별 거 아닌 따뜻한 초콜릿 한 잔을 한 모금 마신 순간, 나는 엄마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미친듯한 뜨거움과 단맛과 끈적함(?)이 몸을 위로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의 커피와 음료를 날 위해서 만들어놓고는, 거기서 주는 위로를 놓쳐왔던가. 

설탕과 핫초코 가루와 물과 초콜릿을 넣어서 끓인다. 당연하게도 사용한 초콜릿의 맛에 음료의 맛이 좌우된다... 맛있는 초콜릿을 쓰세요.
"특유의 느긋함이 있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느긋하게 만들어줘요"


예전에 받았던 심리상담에서,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다. 당시의 나는(그리고 지금도) 조급함의 대명사였기에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음료는 나를 흐물흐물하게 풀어주었다.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그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들은 그 사람을 닮게 되니까. 물론 음료가 맛있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그렇다는 의미이다. 

위의 사진에 우유를 적절히 부어서 팔팔 끓인다. 그리고 옮겨서 마시면 끝.
아주 달거나, 아주 시거나, 아주 쓰거나, 그런 자극적인 맛들로 잠깐 정신 차릴 수 있다.

내가 만드는 핫 코 초가 딱 그렇다. 만들기 어렵지도 않고, 단 것을 안 좋아하는 나에게는 치명적인 음료이다. 그러나 피곤할 때, 힘들 때, 무거울 때는 이 음료가 생각이 난다. 잠이 깨고 싶으면 에스프레소나 진한 커피를 넣으면 된다. 그러면 카페모카 완성이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초코가 주는 달달함만으로 위로받아보길 바란다. 한 번쯤은 재촉이나 각성이 아닌 여유를 위한 음료도 좋으니까!

이날은 돈이 좀 있어서 마시멜로우를 사서 잘라서 넣었다.

요 며칠, 이사를 하고, 집을 다시 구하고, 여러 가지 생각하고 발로 뛸 것이 많았다. 그래서 앓아누웠다. 아프면 잠이라도 자면 좋은데 아파서 잠도 못 자고 그냥 공기가 나를 두들겨 패는 느낌만 받았다. 그 와중에 다시 이 초콜릿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만들었다. 여전히 몸은 아프지만 훨씬 상태가 괜찮아졌다. 이 단맛이 질리면 진한 드립 커피가 당기겠지. 당분간은 달달함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위로를 받을 구석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우유 거품은 거품기를 써서 만드셔도 되고, 텀블러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텀블러 안에 우유, 얼음 몇 조각(깨끗한 포일 뭉치 가능, 호두를 쓰는 사람도 있더군요), 설탕 조금 넣어서 흔들흔들하면 단단하지는 않지만 꽤 멋진 우유 거품이 만들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냥 브런치 돌아보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