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이 아닌, 나를 위한 tea time.
네 커피는 힘을 쓴 후에 몸을 풀어주는, 위로해주는 그런 느낌의 커피야. 하루를 시작할 때가 아니라 하루를 끝내고 마셔야 하는 거지
하루 끝에 카페인 마시면 잠 못 잘 텐데요.
집에 가끔 가면 여러 믹스커피로 허접한 커피를 만든다. 그냥 믹스커피를 달게 마셔왔던 엄마는 우유, 카누, 맥심, 가끔 휘핑크림 등으로 카페랑 비슷하게 만드는 집 커피가 신기하나 보다. 그러니까, 내가 만드는 커피는 '내린다'던가 '좋은 원두'라는 단어와는 아주 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커피이다. 유튜브나 트위터, 여러 서적에서 '집에서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커피 레시피에 아주 예전에 카페 알바를 했던 '정성'을 조금 쏟았을 뿐이다. 그 정성을 쏟는 과정에서 활력을 얻었고, 작은 취미가 생기기도 했으니, 나에게 커피는 말 그대로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이다.
하루를 여는 커피였는데, 신기하게 "하루를 끝내고 마시는 느낌"이라는 청개구리 같은 답변을 들었다.
하루를 여는 커피는 상상하기 쉽다. "카페인이 내 뺨을 때린다" 혹은 "당과 카페인과 함께라면 오늘 하루도 두렵지 않아!"이런 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커피를 즐기는 여유는 없어졌다. 다들 살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마셨고, 내가 집에서 타 온 커피는 옆사람으로 하여금 '사약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진했다.
예전에는 우유에 그냥 카누를 탄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는데. 이제는 비싼 커피를 마셔도 그냥 카페 대여비 같은 느낌으로 마셨다. 그런 나인데 하루를 끝내는 커피라고? 내가 만든 커피가?
엄마의 말은 한 달이 지난 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짬 내서 취업준비를 했으나 결국 취업하지 못하고 졸업이 확정되었다. 그렇기에 시간이 붕떠서 무엇이든 너그럽게 할 여유가 생겨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서 '리얼 핫초코'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커피와 만드는 방법은 딱히 다르지 않다.
그렇게 여러 유튜브와 내가 알던 지식을 그냥 쏟아부어서 별 거 아닌 따뜻한 초콜릿 한 잔을 한 모금 마신 순간, 나는 엄마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미친듯한 뜨거움과 단맛과 끈적함(?)이 몸을 위로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의 커피와 음료를 날 위해서 만들어놓고는, 거기서 주는 위로를 놓쳐왔던가.
"특유의 느긋함이 있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느긋하게 만들어줘요"
예전에 받았던 심리상담에서,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다. 당시의 나는(그리고 지금도) 조급함의 대명사였기에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음료는 나를 흐물흐물하게 풀어주었다.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그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들은 그 사람을 닮게 되니까. 물론 음료가 맛있지는 않지만 분위기가 그렇다는 의미이다.
아주 달거나, 아주 시거나, 아주 쓰거나, 그런 자극적인 맛들로 잠깐 정신 차릴 수 있다.
내가 만드는 핫 코 초가 딱 그렇다. 만들기 어렵지도 않고, 단 것을 안 좋아하는 나에게는 치명적인 음료이다. 그러나 피곤할 때, 힘들 때, 무거울 때는 이 음료가 생각이 난다. 잠이 깨고 싶으면 에스프레소나 진한 커피를 넣으면 된다. 그러면 카페모카 완성이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초코가 주는 달달함만으로 위로받아보길 바란다. 한 번쯤은 재촉이나 각성이 아닌 여유를 위한 음료도 좋으니까!
요 며칠, 이사를 하고, 집을 다시 구하고, 여러 가지 생각하고 발로 뛸 것이 많았다. 그래서 앓아누웠다. 아프면 잠이라도 자면 좋은데 아파서 잠도 못 자고 그냥 공기가 나를 두들겨 패는 느낌만 받았다. 그 와중에 다시 이 초콜릿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만들었다. 여전히 몸은 아프지만 훨씬 상태가 괜찮아졌다. 이 단맛이 질리면 진한 드립 커피가 당기겠지. 당분간은 달달함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한다. 위로를 받을 구석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우유 거품은 거품기를 써서 만드셔도 되고, 텀블러를 이용하셔도 됩니다! 텀블러 안에 우유, 얼음 몇 조각(깨끗한 포일 뭉치 가능, 호두를 쓰는 사람도 있더군요), 설탕 조금 넣어서 흔들흔들하면 단단하지는 않지만 꽤 멋진 우유 거품이 만들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