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완성되는 과정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제 과정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그냥 갑자기 그러고 싶었다.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끝나기만을 바라는, 끝내기만 하는 삶은 이제 질렸다. 지쳤다. 그래서 그림을 그릴 때, 완성본뿐 아니라, 완성이 되어가는 과정까지 일일이 사진으로 찍었다. 괜찮으면 gif로 만드려고 한다.
졸업이 승인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바이러스 덕에 졸업식은 못 했으나 졸업은 승인되었다. 이렇게나 쉽게, 한 줄로 내 몇 년이 요약되었다. 이 한 줄을 못 받을까 봐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무엇 하나가 뒤틀릴 때마다 덜덜 떨면서 학교 졸업 요건을 1분에 한 번꼴로 다시 찾아보고 과사에 전화하고…. 그랬는데 이렇게 한 줄로 요약이 된다니.
학교 직원분들에겐 일상이었을 '졸업 승인', 그저 한 줄을 입력하면 끝이었겠지. 내 수고와 과정은 나만 알아주면 된다지만, 허무하다.
“뭐야, 취직 준비 안 했어?”
우리 건물에 살던 사람들 전부 취직을 다 하고 나갔는데.
원룸 계약이 만료되어 보증금 얘기를 하기 위해 집주인 분과 이야기를 했더니 갑자기 타박을 받았다. 취업을 못 한 사람이 신기하신지 너무나도 뚫어져라 쳐다보길래,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눈을 피했다. 집 정리를 하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고 노트북을 켰다.
워드를 펼치면 작년과 올해 썼던 자소서들이 펼쳐진다. 면접 자료, 면접 대본도 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쉽게 “취업준비를 안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이 모든 것을 알아달라고 노트북을 다짜고짜 켜서 다 보여줄 수도 없다.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누군가를 실패한 사람, 안 한 사람으로 분류해버린다. 남의 과정에는 관심이 없다. 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상처입혔겠지.
오늘은 오랜만에 집 청소를 했다. 한 교재를 5번씩 풀고, 한때는 꽤나 높은 등수였던 성적표가 나온다.
나는 정말 애썼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미안할 정도로 과거의 나는 애썼다.
그러나 당시에 내가 부모님께 "들은 말은 실력도 없는 게"였다. 그날은 비가 왔고 새벽 1시가 다 되어갔으며 나는 3프로의 배터리를 가진 폴더폰을 가지고 친구 세명에게 ‘밖에 나왔다. 재워줄 수 있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2프로일 때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그 집으로 가서 잠을 잤다. 그 와중에 다음날 모의고사여서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나는 화장실에서 토를 하고 1교시 시험을 쳤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하면 어머니는 웃고 만다. “내가 좀 그랬지” 라며. 나는 또 쉽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 한 미성숙한 사람'이 된다.
타인으로 인해 나는 쉽게 정의된다. 그때마다 느낀다. 내 과정은 아무도 모른다. 나라도 알아줘야한다.
나는 나만을 만족시켜야 하며 내 과정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겨줘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러면 그랬던 순간을 전부 내가 알아줘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과정 속에 있을수록 더더욱.
그러나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건 나에겐 아직 어렵다. 지금까지 나도, 내 옆의 친구들도 나의 선배들도 전부 ‘이것만 끝내면 네 세상이야’라는 암시를 받으면서 살아왔으니까. 대학만 가면, 취업만 하면, 뭐만 하면.
그러나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첫 번째의 '~가면', ‘대학만 가면’에서 나는 아주 멋있게 와장창 무너졌다. 무너지는 와중에도 삶은 계속되어서 신기했고, 질렸다.
이걸 깨달았지만 나는 또 무너지겠지. 그래도 이제 바보처럼 무너지고 싶지 않다. 어차피 무너진다면 과정 하나하나 소중히 여겨주며 나를 감싸면서 데굴데굴 구르고 싶다. 시간과 함께 과정과 함께 기꺼이 구르고 싶다.
끝내기 위한 삶은 지겹다. 질렸다. 나는 지금을 살아갈 것이며 그 과정 하나하나 그 순간순간마다 살아있을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