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지금 그럴 때니?

대학생 때, 가장 많이 들은 말.

by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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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쓸데없는 것을 왜 하지? H자동차에 들어가서 자동차나 만들어”


학생은 왜 이 과에 왔나?

그 질문에 "톱니바퀴가 좋아서요. 언젠가 시계 엔지니어이자 디자이너가 될 겁니다."라고 대답한 나에게 교수님이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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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많지만 먼저, 내가 그 회사에 들어갈 정도로 스펙이 좋은 것도 아니며 학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말씀을 들으니 어떤 얘기를 해도 타박을 주셨을 것 같아서 생각을 그만두었다.

지금은 쓸데없는 짓을 해도 괜찮지 않나? 20대 초반이었는데. 나는 여건만 된다면 여기서 더 나이가 들어도 쓸데없는 짓을 하며 살고 싶다. 대기업 생산직에 들어간다는 꿈을 가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이 없다는 눈빛을 받을 거면, 그런 철이라면 안 들어도 된다. 나는 아직 젊기 때문에 ‘그래, 아직 어려서 뭘 모르네.’라는 말을 들을법한 허튼짓(?)을 하고 싶다. 그 나이 때답다는 뜻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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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반수를 했고, 학점이 0점대가 나온 적도 있었다. 2학년 때는 2점대를 받았다. (라임 보소) 이런 내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언니, 학점 없어도 괜찮을까요…? 취업, 괜찮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이 없다. 왜냐면 난 학점이 낮아도 졸업했고 아직 취업은 못 했기 때문에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할만한 자격이 없다.

그리고 안타깝다. 지금 나는 학점에 큰 콤플렉스는 느끼지 않는다. 면접에서 한번 학점이 좋지 않다는 말은 들었지만, 서류 합격률도 작년에 꽤 좋았다. 학점에서 자를 거면 애초에 서류도 붙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딱 평균 b의 학점을 갖고 있다. 안 좋은 학점은 계절학기나 재수강으로 채우면 된다. 아직 1학년인 애들은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큰일이 난 듯한 표정을 짓는다. 잘 된 케이스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시간을 지나온 몇 살 많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는 ‘괜찮다. 네가 걱정하는 거 다 괜찮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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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살아가면서 돈을 내고, 수업을 다시 듣는다고 결과를 바꿔주는 기회는 잘 없다. 이건 대학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회이고, 20대 초반이라서, 졸업이 많이 급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돈과 시간 둘 다 중요하지만, 대학생에겐 시간이 있다. 돈, 시간 둘 다 없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가.

대학생이 참 재미있는 건, 어떤 일을 하든 어른들에게 쓴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내가 공부만 할 때는 “나 때는 청춘다운 일을 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인생 얘기도 했는데,”를 들었고 성적이 안 좋아서 재수강을 하려고 공부를 대충 하고 있다니까”학점을 어떻게 하려고? 학비 대주시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걱정이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뭘 하든 그들의 스트레스 풀이의 도구가 될 뿐이니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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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생 때 한 일들은 아래와 같다. (사람마다 이것이 허튼짓인지 아닌지 입장 차이가 날 수도 있으니 그냥 구분 없이 적겠다.)

전공 공부
모르는 거 교수님께 메일 보내고 직접 찾아가서 1대 1 질문, 전공 프로그램 서적과 유튜브로 공부, 졸업 프로젝트를 위한 조언을 구하려고 여러 사람들 찾아가서 자문 구하기.
전공이 아닌 공부
디자인 툴 공부, 영상 및 잡지 편집 공부, 그림 공부, 심리 우울증 관련 서적과 주간지 찾아 읽기, 커피 공부
그 외
학교 및 사설 심리상담 들음, 심리상담 스터디, 카페 아르바이트, 굿즈 만들기, 글쓰기 모임 들기, 플랫폼 성장시키기, 브런치, 만화 동아리에 단편만화 싣기, 에세이 기고, 일러스트 공모전, 동아리 팀원들과 밤새서 책 읽기, 검도, 복싱, 아침 달리기, 친구 집에서 자기, 친구들 집에서 재우기, 혼자 여행 4번 이상(해외 포함), 산책, 좋아하는 카페 발굴하기, 벽화 봉사, 전시회 가기, 음악회 가기, 뮤지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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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 무엇이든 하고자 했던 것들이 연결된다. 톱니바퀴가 좋다고 말해서 교수님을 당황시켰던 나는 팀 프로젝트에서 톱니바퀴 구현을 맡았다. 나의 디자인 툴 공부는 팀 프로젝트에서 디자인과 학생과 협업을 도왔고, 심리 관련된 글을 읽었던 경험과 지식은 심리상담 스터디에서 인생 친구들을 찾게 해 주었다. 혼자 간 여행으로 여행지의 매력을 확실히 알았고, 친구들과 동이 틀 때까지 떠들면서 서로의 관계가 돈독해졌다. 카페 알바는 내가 커피를 공부하게 도와주었고, 산책에서는 길고양이들을 만나며 외롭지 않게 되었다.


꼭 어떤 성과를 내지 않아도 지금 하면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언제든 철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알아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괜찮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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