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채우는 빈칸, 일상

시간이 오직 나로 인해 쪼개지니까, 어깨가 무겁다.

by chul

요즘 코로나 때문에 무너진 일상으로 사람들이 일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난 개인적인 일로 이 전에 일상이 2년 정도 완전히 무너진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일상에 대한 생각은 지금과 예전이 딱히 달라지진 않았다. 일상은 달라졌지만.

간단하게 구도를 짰다. 구름과 빛의 위치를 그렸다. 하필 초록색으로 해서 나무가 춤추는 것만 같다.

졸업+미취업+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들로 시간이 여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한 달 전만 해도, 대학 졸업까지 1분 1초에 쫓기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일상이 뭔지도 모르고 구르다가 일상의 중요성을 안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나의 일상에 시간이라는 놈이 넘치도록 흘러들어왔다.

이번에는 노을과 맑은 하늘을 대비되게 그릴 생각입니다. 속상한 마음에 그림을 시작했더니 빠르게 잘 그려졌다. 하하.

한때는, 너무 무서웠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소속이 없다는 건, 모든 시간과 성과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달려있다는 의미였다.

지금까지 나의 시간은 많은 다른 요소들이 정해주었다. 졸업요건은 내가 들을 시간표를 정해주었고, 교수님과 팀원들은 내가 작업실에 가서 해야 할 일을 정해주었다. 학사 일정은 나의 쉬는 날과 공부할 날을 정해주었고, 시험은 도서관에 가야 함을, 가서 해야 할 공부를 정해주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문 밖으로 내가 발을 내디딘 순간, 이 하루의 시간 분배와 흐름이 오로지 나 하나에게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식은땀이 났다. 내가 멘 것은 가방이 아니라 부담과 낯섬으로 인한 긴장이었다. 가방 안에 든 것은 파우치와 노트북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정해지지 않은 나의 방황이었다.

주황색: 나를 왜 칠한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앞가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가 무력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뭘 해야 할까. 누가 가르쳐줘 제발. 이 불안은 나를 아침 6시에 눈뜨게 만들었다. 나는 더 이상 아침 일찍 해야 할 오전 시험이 없다.

그래서, 아침을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갑자기 사진이 나와서 놀라셨죠?

항상 나의 아침은 라면먹듯 호로록하고 지나갔다. 그렇기에 아침밥은 머리가 돌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당만 ‘일단’ 주는 정도였다. 일본 만화의 한 장면처럼 가방을 들고 뛰어가며 얼어서 깡깡한 식빵을 입에 물고 뛰어다닌 적도 있다. 그러나 백수의 하루는 길다. 심지어 아침을 일찍 시작한 하루는 더 길다. 나는 로망이었던 느긋한 아침을 일상으로 만들기로 했다.

신비로운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군요. 노을에서 갑자기 새벽이 되어버림.

아침에 눈을 떠서 배가 고파지기 전에, 외워야 할 표가 아닌 쓰고 싶었던 글을 쓴다. 하다가 피곤하면 다시 눕는다. 괜히 커튼을 젖히며 ‘세상아 안녕하냐!’라고 인사한다. 그리고 오늘 할 일을 생각한다. 항상 전 날에 바쁘게 정리하던 스케줄표를 지금은 그 하루에 느긋하게 짠다. 물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인상을 엄청 찡그린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해야 할 일인걸. 나는 그 일을 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며 이것이 나의 일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반복되어서 나를 이루는 일상력이 되었다. 비록 아직까지 수확은 없지만 말이다.

깨진 유리 안에 맑은 하늘이 있다. 대비되는 하늘이 좋다.

본가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살면서, 그들이 금전적에 대한 얘기를 나누거나 가끔 나에게 호소하면 곤란해진다. 나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해서 내 일상은 무력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무력감에서 나를 구원하는 것도 내가 쌓은 일상이 발휘하는 힘이다. 나는 산책을 했고, 스케줄 정리를 했으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공고도 찾고, 몇 개는 지원도 했다.

이제 또 무엇을 일상으로 만들지. 빼야 할까 더해야 할까. 시간이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으니 참 머리 아프다. 결과는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달려있으면서. 하지만 언젠가는 이렇게 나를 달래며 일상을 살아온 일상력이 힘을 발휘하겠지. 어쩌면 지금도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를 뿐.

나와 일상은 최선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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