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우습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이 시기를, 웃으며 회상하고 있을까?

by chul


내가 뭐라고, 나한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보다 어린 친구들. 그 친구들과 나는 고작 2,3살 차이일 뿐인데, 20대는 그런 것 같아. 왜냐면 나도 그 친구들을 보면서 그때 나도 저랬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진 내 모습이 보이거든.

우리도 생각해보면 거의 10년을 알고 지냈지. 그래서 다를 것이 없는 관계인데도 또 생각해보면 많이 달라졌어. 어제랑 오늘 또 달라. 어제와 오늘 사이에 우린 서로 섭섭했던 것을 말했을 수도 있고, 최근에 있었던 힘든 일을 털어놓았을 수도 있지. 그럼 또 관계의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 그런데 우리 엄마도 우리처럼 중,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친한 친구분들이 있거든? 그런데 엄마는 이제 별로 안 변한다고 하더라고. 우리도 그때쯤 되면 딱히 하루하루 바쁘게 변하지 않고 단단한 어른이 되어 있을까? 우리의 변화는 성장일까?


우린 어린 친구들이 보기에 우습지 않은 어른이 되어 있을까?

20대가 얼마 안 남았지만, 진짜 20대는 답도 뭣도 없는 나이 같아. 우리끼리 얘기할 때, 항상 '21, 22이 제일 바보 같은 나의 모습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이렇게 자조하곤 하지. 한두 살 차이가 뭐라고 우리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말해줄 것이 있겠냐만은, 또 말해줄 게 있거든. 참 신기하지. 누군가가 '언니, 고등학생 친구들한테 이런 감정이 드는데 저 쪼잔한가요?'이러면 '음, 나도 그랬어. 그땐 다 쪼잔해지지. 그런데 나중에 괜찮아져.'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어.

'나도 그땐 그랬어'라는 말이 주는 힘.

내가 좋아하는 하정 작가님의 책에서 나온 말이야. 이 말이 두고두고 울림이 되어서, 나는 누군가 특히 내가 겪었던 것을 또다시 겪고 있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로봇처럼 저 말을 먼저 해.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거든? 그런데 괜찮아져.

실제로 이 말을 엄마한테 들었는데, 진짜 든든하더라고. 다들 뭐 꼰대니 오지랖이니 하지만, 내가 가야 할 미지의 길을 걸어온 누군가의 말이 참 힘이 되는 것 같아. 그 사람이 그 길을 걸어서 어떤 결과를 얻었던 상관이 없어. 걸었던 것만으로 나에게 위안이 돼.

왜냐면, 다들 또 일상을 살고 있거든. 생각보다 어떤 일 때문에 인생이 정말 망해버린 일은 잘 없더라. 바뀌어버리긴 해도 망하진 않더라. 우린 언제부터인가 '이 일을 하면 멋있게 성공할 거야'라는 말보다 '이 일을 해서 망하진 않을 거야'라는 말을 더 바라고 있네.

정말, 20대이긴 한데, 이도 저도 아니야. 뭔가 경험이 쌓여서 덤덤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열정만 가진 청춘도 아니야. 애매하게 뭔가를 알고 애매하게 실패하고 애매하게 성공을 해서, 눈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지.

이 나이가 너무 신기한 게, 다들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거야. 누구는 퇴사하고 누구는 취직하고, 나는 취업준비생이고 또 누구는 공시생이지.

친구 1은 이번에 졸업학년이 되면서 대학교 멘토링 프로그램에 멘토가 되었어. 친구 2는 그 대학교 신입생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에서 멘티로 들어갔지. 그리고 둘 다 동갑이야. 다 대학가던 20대 초반과 다르게 지금은 우리 모두 속도가 다른 것이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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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다 다른데, 신기한 건 다 같은 고민이야. 우리가 만나면 늘 하는 말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당장 눈 앞의 일이 과연 좋게 바뀔지, 아닐지도 모르겠고. 지금 이 상황이 계속될까 봐 두렵고,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누구는 쉬라고 하고 누구는 달리라고 하고 그리고 현실은 또 잘 보인다. 이제 뭘 해야 할지, 해서 바뀌긴 하는 건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는 건지. 이런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줘도 되는 건지, 잘난 것도 없으면 너무 말했나 싶기도 하고. 진짜 애매한 나이야, 우리가 뭘 하고 있던 막막함을 느끼는 나이야. 다들 지나간다고 하는데 정말 지나갈지, 언제 지나갈지 전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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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졸업 전에 취업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네. 항상 '어떻게 되진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어버려. 우습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나이로는 성인이 된 지 한참인데, 왜 이리 가진 것도 없고 막막할까. 나는 '저런 사람만은 되지 말아야지'에서 '저런 사람'을 담당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지금, 커피나 술을 마시며 '그때 참 별 것 아닌 걸로 목숨 걸었지'라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처럼, 지금 이 나날들도 그런 날이 될까? 그때는 좀 덜 막막할까? 당당하게 지금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에게 '나도 그랬어'라고 말할 날이 올까?

지금의 나로선,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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