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하늘에 집착하게 되었지?
서울에서 혼자 살기 전에 나에게 하늘이란 정말 당연하고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그런 존재였다. 구름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나 서울에 올라와서 좁은 방에서 혼자 안절부절 못 했다. 그냥 좁아서 안절부절 못 한 게 아니다. 나는 그걸 1년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아, 하늘이 안 보여.
하늘만 안 보이면 그나마 다행이었고, 바로 앞에 옆 건물이 있어서 햇빛이 안 드는 곳에서 피어나는 곰팡이와 절망이 함께 사이좋게 피어나기도 했다. 서울에서 이사를 여러 번 갔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된 하늘이 보이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냥 집 밖에 나오면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그게 왜 그리 억울하던지. 바로 코 앞에 있는데 하늘을 보지 못하니까 답답했다. 그때부터 하늘과 구름을 그리기 시작했다.
삼각형인 구름.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더 이상한 구름이 많답니다. 하늘, 특히 구름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공부하면서 구름은 정말 제멋대로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히려 구름다운 구름을 그리려면 이도 저도 아닌 뭔가가 나온다. 구름의 모양새를 공부해서 멋진 하늘을 그리겠다고 마음먹고, 갤러리에 있는 많은 구름 사진들을 찾아봤더니, 이놈들 지들 멋대로 생겼다. 자연이란 이렇구나, 그냥 자연스럽게 생겼구나. 그 이후부터는 구름을 그릴 때, 보고 싶은 구름을 그리려고 했다. 이렇게 생긴 구름이란 개념은 없어졌다.
이 그림은 내가 그린 구름 중 가장 맘에 드는 구름이다. 그런데 이제 저렇게 안 나온다. 저때만 신이 들렸던 것 같다. 돌아와.... 그리고 한때는 맑은 하늘만 고집했었는데, 여러 번 그리다 보니 하늘에도 많은 순간과 종류가 있음을 알았다. 크게 분류하자면 1. 대낮의 맑은 하늘 2. 노을 3. 새벽 4. 밤하늘 정도인데, 하나를 더 넣자면 5. 특이한 색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스러운 하늘이다. 5번의 경우에는 잘못 그리면 이상함이 단점이 되기 때문에 세련된 색상 조합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게 이상함을 매력으로 바꾸어주는 색 감각은 없다. 그냥 어디 그림 보고 색상을 뽑아내거나 color palette라고 검색해서 맘에 드는 색으로 그려본다.
배경과 구분이 안 되는 구름과 배경과 다르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구름. 둘 다 밑에는 하늘이 비치는 물이다. 한때는 친구들 생일에 항상 하늘 그림을 그려서 주었다. 우리들만 알아볼 수 있게 주인공들을 넣어서. 나는 그림에서 사람을 잘 넣지 않는다. 그 예외가 친구들의 생일을 축하해 줄 때였다. 뭔가 덩그러니 그림만 있으면 좀 그러니까, 재미난 요소가 하나씩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에서 그 겉모습을 빌려왔기에, 그림을 보면서
"어 이 옷은 언제 어디를 갔을 때 입었지?"," 이 사진에서 들고 있는 이건 뭐였지?"
이렇게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스릴(?)도 느낄 수 있다.
이건 최근에 올렸던 그림. 사실 배경의 구름보다 창 안의 비현실적인 이상한 구름이 더 맘에 든다. 좋아하는 하늘 그림은 한 장면 안에 있는 두 개의 하늘이다. 한 그림 안에 흐림과 맑음, 밤과 낮, 노을과 새벽(사실 이 두 개는 나도 구분을 못 한다.) 혹은 그냥 대비되는 색의 하늘을 넣는다. 꼭 대비되지 않더라도 다른 시간대, 분위기의 하늘이 공존하는 그림을 좋아한다. 자주 쓰는 포인트는 창문, 문, 반사되는 물, 깨진 유리 등등이다. 사물이나 동물의 윤곽만 그려놓고 바깥과 안의 채색을 다르게 할 때도 있다.
요즘은 그림을 그리는 상상력이 거의 없어져서, 원래 있던 사진에 상상을 더하고 있다. 내가 찍은 사진 중, 좋아하는 사진의 분위기를 바꾸어버리는 것도 재미가 있다. 사진은 실제니까 내가 그린 그림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분위기의 색 조합으로 환상적인 분위기에 초점을 맞춘다. 과거를 미화하는 편은 아니지만, 예전의 사진을 지금의 나의 정서로 바꾸는 작업은 매력적이다. 원래 있던 사물을 어디까지 재현하고 무엇을 어떻게 없앨 것인지 고민하는 재미도 있다.
거의 처음 그렸던 구름. 색 조합만으로도 벅찼던 그때.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사실 오늘도 구름을 하나 그렸다. 글이 완성되면 같이 올리려고 한다.
오늘 산책을 나가니까 구름이 하나도 없었다. 실제로는 구름이 없는 하늘이 좋으면서 그림에서는 최대한 구름을 화려하게, 많이 그리려는 내가 모순적이다.
하늘을 잃기 전에는 하늘을 몰랐다.
지금도 나는 잃기 전에는 의식하지 않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겠지. 잃고 나서야 찾아다니는 귀하고 자연스러운 모든 것들. 잃기 전에 알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과거도 지금도 아마 미래에서도 그 많은 것들을 그림과 글로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