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그러고 보니 미뤄놓았던 에세이 공모전과 새로운 공모전이 있네? 주제를 보니까 괜찮은 제목이 떠오른다.
못쓰겠다.
그러고 보니 친구에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고 있었지! 참, 깜빡했네, 갑자기 서류 불합격 통보받는 바람에 말이야 하하. 오랜만에 자소서가 아닌 가벼운 글을 즐겁게 써볼까?
못쓰겠다.
젠장, 못하겠다. 예쁜 글을 쓸 수가 없다. 예쁜 말이 안 나온다. 예쁜 말이 안 다가온다. 하나도 안 들린다.
브런치를 처음 만났을 때, 플랫폼의 디자인과 아이콘 그리고 여러 글들을 보면서 느꼈던 첫인상은 다음과 같았다.
참 예쁘다.
저런 가치관,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런 글을 쓰고 싶다. 그림도 참 예쁘다. 저런 결과물은 저 작가님이 그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기에 가능할 거야.
그리고 생각했다. 난 저런 글을 쓸 수 없다. 저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 그래도 나는 나니까, 내 글과 그림을 쓰고 그려야지. 그것만으로 충분할 거야.
그러나 곧 브런치에는 예쁜 글만 올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글쓰기 모임에서 건강하고 예쁜 가치관을 가진 분들의 건강하고 신선한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지 헷갈렸다. 마치 백조들 사이의 길을 잃어서 잘못 들어온 까마귀가 된 듯했다. 까마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백조들 ‘사이’에 들어간 까마귀라는 점이 나의 문제였다. 내가 까마귀인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내가 백조가 되고 싶어 하는 까마귀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쓸 수 없는 글을 동경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아니(한국사람들이 화낼 때마다 앞에 붙이는 말), 예쁜 일이 있어야 세상이 예쁘게 보이지 않겠는가.
지금 내 눈앞의 세상은 더럽게 힘들다. 글은 사람을 투영한다. 공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옷이 깨끗할 수가 있겠는가.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난 그를 신으로 섬기리라. 나는 사람이기에 저럴 수 없다. 지금 세상은 하나도 예쁘지 않다. 코로나바이러스, 미뤄진 채용과 경제활성화, 범죄자들의 솜방망이 처벌, 달고나 커피… 는 달콤하니까 봐준다. 내 개인적인 세상도 하나도 안 예쁘다.
항상 들고 다니는 명언집을 본다. 흔들릴때마다 보는 명언집들이다. 펼친다. 닫는다. 저리 치운다. 인생은 그런 거라고? 그 정도는 나도 알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있다? 그것도 안다. 체험하지 못했지만 맞는 말이란 건 안다. 그러나 지금은 그냥 나를 안아줘.
그 어떤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나를 밤이 안아주길. 아침이 나를 맞이해주길. 그 어떤 말도 말고 그냥, 희망찬 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냥 나를 안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