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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pr 29. 2020

고통은 전시가 아니라 '전달'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만들지 말자.

감정은 죽일 수 없다. 그러니까 감정은 감정 그대로 두고, 우리가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자.

이 이야기는 꺼내기 참 힘들었다.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이 글 또한 적어도 5번은 고쳐질 것이다. 고통을 전시하고 전달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고통은 전시가 아니라 전달이다. 전시하지 말자.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누군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잠깐 카카오톡을 안 봤다. 다시 봤다. 그러니 +99가 되어있다. 단톡일 수도 있고, 갠톡일 수도 있다. 그 카톡은 전부 a에게서 온 a의 일상의 불평, 불만이다.

 그런데 저 수많은 카톡에서 내 얘기가 없다? 나랑 그전에 한 얘기에 대한 답이 없이, 나더러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냐는 말이 없이,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사전 배경과 나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의 내용이 없이 그냥 다짜고짜 힘든 일만 적어놓았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때 나는 그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아름답군요, 오늘 사진은 전부 전시와 관련된 사진입니다. 아니 그냥 전시 사진입니다.

남의 고통을 전시처럼 보면 안 된다. 내 고통도 전시하면 안 된다. 고통을 구경하고, 전시하면 아래와 같은 경우가 생긴다.

1. 남의 고통을 보면서 “내가 쟤보단 낫네.” 혹은 ‘나에 비하면 쟤는 뭐 양반이지..’라고 생각하는 경우.

속으로 무슨 생각하든, 알 바 아닙니다만 당사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내가 응징할 것입니다.
2. 내 고통이 남에겐 그저 흥미 없는 하나의 얘깃거리가 되어버린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내 고통을 알게 되는 건, 남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다.(만약 당시의 고통이 기쁨이 되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이 달라지지만. 이런 경우 잘 없지요? 있다면 자신을 돌아보자.)
마카롱이 아름답게 전시되어있다.
그렇다면 지금 잘난척하는 나는 어떨까? 잘하고 있을까.

설마, 그게 되면 내가 사람이겠는가. 다만 나는 정말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힘들지 않으면, 적어도 전후 사정을 얘기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바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힘든 이야기는 메시지보다는 전화나 직접 만나서 얘기하려고 한다. 나도 한 불평하는 사람이다. 대충 다음과 같다.

앞의 이어지는 내용을 답한다.
 -> 그런데 내가 속상한 일이 있었어. 톡이(혹은 전화가) 좀 길어질 수도 있어.
 -> 상황 설명 -> 왜 속상한지 설명.
 -> 어떤 감정이었는지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냥 화났다! 가 아니라, 이런 말을 들어서 민망하다, 저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럽고 허무했다. 등.
 -> 그래서 지금은 이러고 있다는 지금 상황 설명하면서 정리.
-> 중요: 그래,  내 말이 길었네. 너는 요즘 어때?


소곤소곤

병원이나 심리상담을 가더라도 내 이야기를 위해 내가 노력해야 한다. 상담 선생님이나 의사 선생님이 내 말을 잘 못 이해하신다면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병원이나 심리상담에서도! (중요해서 두 번 말한다.)

그런데 그 관련 전문가도 아니고, 나이도 나랑 비슷한 친구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미리 준비까지는 안 해도 적어도 그냥 다짜고짜 늘어놓는 일은 가능한 지양 해야 한다. 전시는 보고 싶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지나가는 사람, 그 전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멱살 잡아서 전시 앞에 데려다 놓았다면(심지어 그 전시는 음울한 내용뿐이다....) 적어도 도슨트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감정을 피우는 나무다.

감정은 소중하다.

 이해받고, 공감받지 않아도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이왕 밖으로 나왔다면 표현하고, 이해받고, 공감받으면 좋겠다. 내 감정도, 당신의 감정도. 감정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가.

 이 소중한 감정, 가능한 남들에게도 이해받으면 좋을까. 그러나 남들이 이해해 줄 의무는 없다. 그렇다면 이해받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해 보자. 들어줄만한 친구를 붙잡고, 이런 일이 있다고 얘기하고, 들어줘서 고맙다고, 언젠가 네가 힘들 때 나에게 늘어놓아도 된다고 말해보자. 전달도 사실,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민폐겠지만, 그 정도도 못 토해내고 살면 삶이 꽤 힘들어질 거니까. 어느 정도 민폐는 괜찮다, 나도 얼마든지 여러분의 민폐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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