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대처는 문제를 인정하면서 시작한다.
쿨한 사람이 아니라서, 속상하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것도 못 한다. 그러나 모든 대처는 문제를 인정하면서 시작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최근에 있었던 일을 조금 각색해서 얘기해보자면, 지인과 더치페이를 하다가 속상한 일이 있었다.
뭐 그런 것까지 나누냐는 말을 들었다. 이 사람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이렇게나 무례한 애였다고?
여기까지만 생각하자. 난 할 게 많잖아. 이번에 서류 탈락도 엄청 많이 했다고. 인적성 시험도 공부해야 해. 그만 생각하자.
그리고 실제로 그만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지인이 있는 단톡에서 그 지인이 나보다 적은 금액을 더치로 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웃음이 나옴과 동시에 기분 나쁨으로 침착해졌다. 그때 알았다.
아, 나 이 일 속상했구나.
말을 함부로 하는 지인에게도 실망했다. 내가 진짜 그 금액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면 아마 그 말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을 말이었다. (당시 굳이 그 금액을 더치로 요구한 이유는, 항상 그 지인은 야금야금 다른 사람들의 돈을 빌렸기에 선을 그으려고 한 행동이었다.) 내가 어떤 상황의 사람일 줄 알고 함부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이렇게까지 적는 것을 보니, 나는 정말 그 일이 기분이 나빴나 보다.
이렇게 문제를 인정해야만 생각이 대처로 넘어갈 수 있다.
대처로는, 적당히 ‘말 가려서 합시다 하하’. 이 정도면 되려나?
정말 쿨한 사람은 상처를 안 받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넘기거나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참, 쿨하지도 않은 주제에 자존심은 세다.
지금까지 나는 ‘나도 별 거 아닌 사람. 너도 별 거 아닌 사람. 별 거 아닌 사람끼리 이러지 맙시다 하하’를 알려주는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대충 이런 방식이다.
1. 무게를 잡으며 나를 무시하는 말을 하는 팀원에게 일부러 밥은 먹었냐 뭐 먹었냐고 묻는다.
2. 말을 무시한다면 말을 무시하는 건가? 하고 말한다.
3. 누구나 남을 무시하는 나쁜 사람으로 찍히고 싶지는 않으므로 그 사람은 나를 무시하지 않았다고 피력한다.(웃기다.)
4. 그럼 그냥 수고했다는 뜻으로 뜬금없이 초콜릿 하나를 그에게 쥐어주곤 했다. (얘 뭐지?라는 인상을 주기에 좋다.)
이 모든 것들은 언뜻 보기엔 그저 바보같이 착한 행동처럼 보이겠지만, 나를 무시한 사람, 그 사람은 잘 안다. 내가 당신이 날 무시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는 것을. 그리고 보통 같은 위치의 사람일 경우, 자신이 친구나 팀원을 무시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명백하게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또 다르다.) 너는 시간 낭비하고 있다. 난 너에게 초콜릿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인데 넌 그런 나를 무시하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힘내라, 여기 초콜릿 먹어라.
이 대처는 쿨한가?
대처 자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최선이기 때문에 쿨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쿨한 대처는 쿨하지 않아서 받은 상처를 인정했기에 가능하다. 쿨함이 쿨하지 않음에서 나온다니, 재미있다. 오늘도 나는 상처 받고, 대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