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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n 23. 2020

뭐 그런 걸로 상처를 주고 그래요?

왜 그런 걸로 상처 받냐는 '쿨병'걸린 당신들에게.

3n살에 졸업한 신입인 내가 대기업 서류 붙었는데, 서류 떨어졌다면 자소서 절대 잘 쓰신 거 아닙니다."


갑자기 시비를 걸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대처하기가 참 힘든데, 왜냐면 나는 시비는커녕 그 말에 대처하는 에너지조차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위의 이 말은 내가 유명한 대학교 커뮤니티에 '서류 합격률이 엄청 낮아졌다. 힘들다. 이 긴 기간 함께 힘내 봅시다.' 하는 글을 올렸고 그 글이 공감수를 많이 받으며 인기글에 떴다. 인기글에 떴으니, 당연히 댓글도 달렸는데 대부분 함께 힘내자, 후배님 힘내라, 건강관리 잘하세요,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런 댓글이 달려있었다. 일단 저 댓글을 보며 많은 생각이 났다.

1. 나는 당시 오픽이 없어서 대기업 자격요건에 충족하지 못했다.

2. 대기업 서류는 붙기가 쉽다. 인적성에서 다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3. 저 사람은 내 자소서를 본 적이 없다.

4. 저 사람은 컨설턴트가 아니라 나랑 같은 이제 졸업한 신입이다.

30살 넘게 먹은 사람이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익명의 힘을 빌려서 저런 댓글을 쓴다고? 세상 참 좋아졌구나. 어차피 모든 일의 사정을 설명할 수도 없는 법. 내 글이 유명해지니 이상한 사람에게 잘 못 걸린 셈 치고 댓글을 달았다.


안녕하세요 학우님, 저는 오픽이 없어서 대기업 자격요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사정과 취준 스펙을 여기에 적지도 않았습니다. 이 글의 맥락은 다 같이 힘 내보자는 것입니다. 귀한 시간 인적성과 면접에 쓰시어 좋은 결과 내시길 바랍니다.


그러자 또 이런 댓글이 달린다.

오픽이 없다고요? 정말 안일한 거 아닙니까 ->? 뭐야 갑자기?

오픽이 없다고 대기업 서류도 안 넣으니 안타까워서 그렇지요 ->? 서류는 넣었다. 말을 안 했을 뿐.


음, 이 사람. 취업준비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대기업 서류를 붙었다면 이제 인적성이나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불안한가 보다. 정말 잘 되어가고 있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 당장 나도 '30살 넘게 졸업 못 하고 신입인 분도 취준을 하고 계시니, 저는 행복한 사람이네요!'라는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다. 안 쓰는 거다. 성인이니까.


다른 사람의 사정을 함부로 평가하고 안타까워하시거나 아쉬워할 일이 아닙니다. 위로라는 형태로 저에게 상처 주는 말씀을 하신 것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위로할 생각도, 상처 줄 생각도 없었다.-> ...는 또 이상한 댓글이 달린다.

이쯤 되자 나는 그냥 그 글을 삭제했다.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자신에게만 예민하고 남에게는 둔감한, '쿨병'걸린 사람이다. 아주 흔한 '쿨병환자'다.


뭐 그런 거에 상처 받고 그래?"

자신이 무례한 지 모르고 솔직한 줄 아는, 자기는 상처 받는 줄만 알고 남 상처 받는 줄은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너는 몰랐겠지만 그건 상처 주는 말이다.'라고 말해봤자이다. 그들은 '너는 몰랐겠지만'에 꽂혀서 '내가 뭘 몰랐다는 거야!'라며 화내기 때문에 대화가 안 돌아간다. 그쯤 되면 나는 그냥 뒤로 물러난다. 왜냐면,

언젠가, 그보다 더한 일이 본인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한때 쿨병 걸렸던 사람으로서, 아주 뼈저리게 나의 과오를 직접 겪으면서(어쩌면 저 댓글도 내 업인지도 모른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결국 내가 뱉은 것이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라고 믿는다. 과장 좀 보태서 그렇다. 내가 아는 상담 선생님께서는 '사람이 받는 상처와 경험의 총량은 다 같다. 그게 한 번에 오느냐, 여러 번 쪼개져서 오느냐,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의 차이이다.'라고 하신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상처를 주고받아서 우리는 0이 되어 흙으로 간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찔리는 사람들, 날 포함해서! 사과할 때는 그냥 사과하자.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대방에게 상처라면 사과해야 마땅하다. 사과에 이유 달지 말자. 이유는 상처 받았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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