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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Sep 24. 2020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야.

사람 흘려보내기.

오랜만에 솔직한 글을 써봤다. 친구들, 가끔은 선배나 나보다 더 연륜 있는 어른들에게, '너는 관계에 있어서 굉장히 담담하구나'라는 말을 듣곤 한다.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그만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고 굉장히 예민하고 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로 몇 달 내내 앓은 적? 당연히 있다. 하루 종일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나는 왜 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거? 맨날 그런다. 그런 내가 이런 말을 왜 듣는 걸까, 오늘도 나는 한 친구에게 정이 털려서 그 친구에 대해서 하루 종일 생각했는데 말이다.

관계에 대해서 내가 쌓아 올린 몇 개의 자세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당연히 정답이 아니며, 내가 나름 칭찬을 들어서 이런 글을 쓴 것이지, 나는 평범한, 별 거 없는 20대다. 그냥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1. 근본을 찾는다.  

또 약속시간에 연락이 안 되는 친구를 지하철역에서 기다리며 한 가지를 알았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늦었다는 게 화난 게 아니다. 늦으면 사람이 기약 없이 기다린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 나를 그 친구가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실제로 나는 카페에서 친구가 늦으면 별 말없이 기다린다. 하지만 늦는다는 연락을 미리 하지 않거나, 카페가 아닌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말없이 기다리게 한다거나, 기다리는 사람에게 그 어떤 대안도 말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 그때 알았다. 나는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화가 남을. 굉장히 피곤한 사람이다. 알면 화가 덜 나냐고? 아니다. 그래도 분노로 어쩔 줄 몰라하는 것과, 당연한 존중을 받지 못하다니, 화가 난다! 하고 잘 알고 있는 것은 다르다.

2.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야.  

가끔 대화하는데 힘 빠지는 사람이 있다. 다른 듣는 이가 전혀 관심이 없어하거나 꺼려하는 주제를 일부러 던져서 그 주제에 대해 해박하다면서 계속 떠들다가 다른 사람이 말하면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표정이 보인다. 눈치는 보는데 배려는 못 해서 우리 모두가 그 하나 때문에 별로인 기분을 느낀다는 것을 모르는 표정. 

그럴 땐 그냥 속으로,

그래, 네가 행복하다면야.

하고 원하는 반응을 내 자존심이 허락하는 하에서 해 준다. 보통 그냥 요약만 한다. "아, 그니까 ~~ 해서~~ 구나. 아, ~~ 거 때문이구나." 팁이라기보다는... 정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겨우 한 대답이다.

3. 솔직히, 즐거웠던 때도 있음을 인정한다. 머쓱하지만.  

우리 인정하자. 기대했기에 실망하는 것이다. 그 친구가 좋았고 어떤 부분은 함께해서 즐거워서 또 함께하고 싶은데 그 친구가 협조를 안 해줘서(정중하게 표현하면) 이 꼴이 났음을.

나도, 즐거웠구나. 또 그렇게 웃고 싶던 거였어. 하지만 이제 너와 그럴 순 없겠지. 그게 슬픈 거야.

하고 스스로를 잘 돌봐주자. 가뜩이나 날씨도 쓸쓸하니까.

4. 이해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  

이해 안 되면 인정한다.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항상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지인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내게 “나는 듣기만 해, 항상 남들이 나에게 얘기만 해”라며 한탄하였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모두에게 같은 자세인 사람은 없으니까.

아, 그래서 네가 나한테 이렇게 얘기하는구나. 그냥, 그게 그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는 그렇게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자신의 힘든 얘기를 들어줘야 하며, 남은 얘기하면 안 되었다. 저렇게 같은 행동에 대한 정의가 획획 바뀌면 정신없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래, 뭐, 바빠서 심심하진 않겠네. 하고 생각하면 조금 가벼워진다.

5. 사람은 흘려보낸다. 어차피 나에게 준 상처는 그에게 다시 돌아가니까.

나는 누군가와 싸우거나, 누군가가 내 감정을 상하게 해도 말을 걸 때 평소와 같이 한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왜 그렇게 하냐, 고 하는데. 글쎄, 그럼 내가 그 친구에게 말을 걸 때 욕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 친구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똑같이 냉랭하게 대해라고? 오히려 나에겐 그것이 에너지였다. 내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서 그것을 은밀하게 전달까지 해서 싸한 분위기를 만드는, 그것만으로도 에너지가 크다. 진짜 화나면 그건 저절로 되는 것이고. 그리고, 나는 정말 바쁘다. 항상 바빴다. 하는 것도 많고 해야 하는 것도 많고, 결정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굳이 내가 복수 안 해도, 그 친구는 나에게 한 것의 몇 배는 심하게 돌아서 받는다. 내가 몇 번이나 보았다. 싸워서 연락을 끊은 지 5년이 지난 친구의 얘기를 다른 친구에게 들었다. 그가 나에게 한 행동과 비슷한 행동을 다른 친구에게서 심하게 당하고 있었다. 전해주는 친구는 그가 불쌍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속으로 ‘인풋 아웃풋 너무 확실한 거 아냐. 세상 무섭다.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리고 새삼, 그의 소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면서 내가 얘를 흘려보냈음을 실감했다.

물론 위의 자세들이 갑자기 된 건 아니다. 나는 사람에게 집착이 심했고, 지금 훨씬 덜 심해졌을 뿐, 심했기 때문에 나를 위한 방법을 찾아내었을 뿐이다. 이런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계속 집착만 하면 너무 힘드니까.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인데 나를 위해서 좀 써야지. 나는 상처를 못 본 척하고 지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 이게 내 생존 방식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 그냥 저절로 되는 방식. 그 방식대로 흘려보내 보자. 별 것처럼 보이지만 별 일 안 일어난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께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한번 실험해보죠. 그 그룹 내에서 하나씩.

여기서 이렇게 해보고 저기서 이렇게 해 봐서 그 상황을 본 뒤, 그곳에서 습득한 좋은 것들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쓸 에너지는 별로 없다. 이 글이 끝내 여러분이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게 했으면 좋겠다. 물론 상식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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