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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Nov 30. 2017

오늘 왠지 머쓱해졌다.

그림을 못 그려서 대신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로.

오늘, 친구와 해외여행 계획을 세웠다.

오늘, 학교 수업 2개를 빠지고 공부를 하는 척 하지도 않고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내내 책만 읽고 멍때렸다. 바리바리 싸 들고 간 전공책 2개는 가방안에 넣어버리곤.

오늘, 부모님에게 문자가 왔다. 



사진이 없어서 같은 작가의 다른 책으로 사진 대체.

나는 항상 나의 상황에 꼭 알맞는 글귀나 노래, 책을 발견하곤 하였다. 억지로 찾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이야기는 좀 더 여유가 있어지면 만화로 그리고 싶다.

뭐 여튼, 오늘 발견한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작년에 이미 읽었던 책인데. 우연히 다시 읽으니까 너무나도 그들 모두가 나였다.

그때는 내가 시간이 지난 후 정신적으로 크게 힘들고 문제가 생길 줄 몰랐다. 우울증이란 남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내가 그들이고 그들이 나였다.

책을 읽다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하루종일 다 읽은 것도 아닌데 해가 질 때까지 계속 붙들고 있었다.

꾸물거리다가, 눈치보다 하고싶은 말, 하고싶을 일, 해야할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다시 집중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칠것이다.



친구 따라 갔던 예술의 전당의 맞은편 

어제, 부모님과 대판 싸웠다.

부모님의 다소 (나도 정리가 안 되는)특이한 교육관때문에 나와 동생은 망가져버렸고. 나는 그것의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항상 어머니가 울고, 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넘어가버렸다.

울고싶고 화내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데. 그게 허탈해서, 안그래도 망가져 있어서 겨우겨우 학교만 다니고 공부는 전혀 해내지 못했던 나는 그냥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졌다.

어차피 스트레스만 받고 아무것도 못 해내는데 그냥 맘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런데 두분에게서 각각 문자와 톡이 왔다.

생활비를 보냈다. 시험 잘 치고 집에 와라. 맛있는 거 사먹어라.

인천에 가 보았다. 너무 좋은 도시였다. 그냥 찍어도 작품이 나온다!

분명히 나는 어제 못할말을 했다. 답답해서. 물론 내가 2n년간 부모님께 받은 많은 상처들로 인한 말이었다고 해도, 어지간히 뻔뻔하지 않으면 듣는 사람이 울 수 밖에 없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말 하고 나서 속이 시원한건 전혀 아니었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모님께 화만 더 났다.

난 항상 이런식으로 내 문제를 넘어가는 부모님이 싫었다.

제대로 사과하고 이야기를 해야하지 않나. 싸우는게 두렵다고 대화를 피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나.

그렇게 난 부모님을 겁쟁이로, 날 용기있고 강단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어쩌면 우리의 문제에 정답이란 없을지도 모른다.

이 문자가, 톡이. 난 늘 어물쩡 넘겨버린다고 싫어하는 이 맛있는 것을 먹으라는 말이. 분명 어제 내가 한 말로 잠 도 못 자고 (슬프든 화가났든) 했을 사람들이 나에게 이 문자를 보낼때까지의 수많은 갈등들이 있었던 거겠지. 이게 부모님의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우리 중 최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서로 상처받고 상처 준 사실은 평생 없어지지 않는다니. 내가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스푼이 귀여웠다.

친구와 해외여행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같이 간 친구들은 나와 속도가 같거나, 내가 좀 더 재촉하는(하지만 그냥 까먹은 걸 말했을 뿐이지 답답한 적은 없었다) 편이었는데, 이 친구는 완전 급하다.

물론 내 잘못이다. 그 친구는 휴학중이고 난 지금 내 학기 중 가장 죽을맛인 종강 전 몇주를 지내고 있다.

나 자신도 여유가 없는데, 해외여행 이야기를 꺼내버린 것이다.

친구들끼리 해외여행인 처음인데다가 원래 완벽한 계획을 좋아했던 그 친구는 나와 다른 친구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좋게 이야기하고, 천천히 하자고 하고 내 사정을 이야기하며 급하게 내가 여기에 많은 신경을 쓸 수가 없다고 해도 그 친구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냥 하고싶은 말을 하였다. 이러다가 많이 놓친다고, 서로 기분만 상한다고. 그리고 상황이 안 좋은데 급하게 말한 나도 미안하다고.

그런데 당황스러웠다. 그 친구가 아니라 내가.

나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스스로가 이 친구보다는 '어른스러운' 사람이라고 좋은 대처라고 뿌듯해했다.

무민쨩.

난 나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

왜냐면 누군가와 이런 일이 생길때 항상 이렇게 할 말을 하곤 '뿌듯한' 생각만 했기에.

진심으로 내가 잘못했구나, 한 적이 없었다. 

어른스럽게 아량을 베풀듯이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해결했다.

하지만, 분명히 나의 잘못 있을것이다. 

나는 먼저 시비가 걸리지 않는 한, 누구에게도 시비를 걸지 않지만. 한번 시비가 걸리면 그 사람을 골탕먹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것 자체가 잘못 된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친구에게 저런 톡을 보내놓고, 아 완전 나 말 잘했어! 했지만, 다시 읽어도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잘못은 쌍방이다. 너무 조급해서 우릴 몰아세운 그 친구와 사정도 안 되면서 여행을 제안한 나.

내 잘못이 훨씬 더 크다. 그 친구가 계획에 민감하다는사실을 좀 더 생각하고 말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내가 그 친구를 넓은 아량으로 감싸안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차라리 싸우는 게 나았나.

약! 달달한 것이야 말로 약!

나는 내가 서울로 와서 일상적인 대화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혹시 내가 나의 생각에만 갇힌 사람이 될까봐 두려워서 억지로라도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어느순간부터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의 친한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눈치를 엄청 보고, 학교도 교수님이 나에게 실망할까봐 억지로 갔다.

배우러 가는 곳에서 배우지 않았다. 공부와는 담을 쌓게 되었다. 사람들은 많이 지나치듯 만났지만, 더 고립되어 갈 뿐이었다.

나는 남을 계속 보고 있다. 하지만 나를 봐야 한다. 남 눈치만 보고 살았더니, 나 자신이 굉장히 사려깊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더라.

그냥 눈치만 보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뿐인데.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할란다.

좋은 말이든 뼈아픈 말이든.

막말하자는 게 아니라.

너무 속으로 삭히기만 했더니 혼자 바보가 되어버렸다. 

내일부터는 다시 잃어버린 생활습관을 찾아야지.

공부도 해야 하고, 지출계획도 세워야 하고, 미뤄놓았던 연락도 해야 하고.

공부를 하는 자세가 돌아왔음 좋겠다. 공부를 하면서 행복했던 고작 몇달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결국 살아가야 하니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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