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부추전 아니고 부추 팬케이크 아니냐?”
룸메이트는 항상 비가 오면 부추전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어느 날 밤, 여전히 비가 오고 룸메이트는 여전히 부추전을 먹고 싶다고 하였는데, 나만 여전하지 않아서 부추전을 만들게 되었다. 왜였을까? 부추전을 초장에 찍어 먹는다는 룸메이트의 이야기에 혹한 걸까, 아니면 그날따라 나도 지쳐있었던 걸까.
‘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애증의 음식일 것이다. 그래, 명절마다 여자들이 그렇게도 부쳐야 하는 음식이다. 친구들도 이제 성인이 되어서 일꾼으로 부려지고 있는지, 명절에 만나면 전을 부쳤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그런데 나는 신기하게도 요리에는 동원된 적이 없어서, 전을 부쳐본 적이 없었다. 대신, 핫케이크는 도톰하게 잘 굽는다. 부치는 게 아니라 굽는다. 이번에 처음 도전한 전도 구워버리고 말았다.
룸메는 부추와 고추를 많이 안 산 자기 잘못이라고 했지만, 어떻게 봐도 이건 구워버린 사람의 잘못이었다. 그래도 과자와 함께 빗소리를 들으면서 묵묵히 초장에 찍어 먹었던 부추 팬케이크는 나쁘지 않았다. 속은 안 익어서 반은 버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전은 두 개다. 하나는 할머니가 내가 매운 것을 좋아한다고 매번 밀가루보다 고추를 더 많이 넣는 부추전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아주 가끔 기분 내킬 때 집에 있는 것으로 대충(대충이 중요하다. 적당히) 구운 김치전이다.
할머니가 너 좋아한다고 이번에도 고추를 엄청나게 샀다!”
명절마다 할머니가 나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이다. 첫째 맞춤형 전이 완성되었다는 소리다. 다른 의미로는 '얘 말고는 아무도 못 먹는 고추 부추전'의 완성을 알리는 소리다. 그러면 나는 남들이 튀김을 먹는 동안 전만 주야장천 먹게 된다. 그래도 좋다. 나만을 위한 전이라니, 그 어떤 손녀가 이런 호사를 누린단 말인가. 한국에서 말이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우리 집 차에 부추전을 왕창 몰아넣어 주신다. 식은 전도 맛있지만 엄마는 항상 식은 전을 다시 부쳐서 나에게 주신다. 가족들이 모여서 할머니가 손녀 맞춤형으로 부친 전을 먹는다. 다들 콜록거리면서 '너는 이걸 잘도 먹는다.' / '점점 매워지는 것 같다.'/ '누나가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니 할머니가 고추를 더 넣고 계시는 게 아니냐'며 투덜거리지만, 나는 맛있으니까 괜찮다!
오랜만에 김치전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엄마가 담은 많은 김치가 잘 익었다. 배추를 옮기느라 온 가족이 구르고 넘어지면서 담은 과정에 비하면, 이 김치의 최후가 전이라는 건 좀 아까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갑자기 나는 김치전이 먹고 싶었다.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겹겹이 쌓인 전을 먹고 싶었다. 전을 반 정도 먹고 있으면 또 다른 전이 올려져서 밑의 전은 식는다. 싸늘하게 식을까 봐 밑의 전을 먹고 있으면 엄마는 따뜻한 위의 전을 먹으라고 재촉한다.
살짝 다른 얘기도 하자면, 우리 엄마가 적당히 만든 음식에는 전 말고 김밥도 있다. 엄마는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기에 힘을 주면 그만큼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들이 나온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대충 만든 음식이 엄마답고 가벼워서 좋다. 콧노래를 부르며 가볍게 부엌을 돌아다니는 엄마와 닮은 음식이 좋다. 가끔 고민하고 힘들어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구름 위를 걷듯 단단하면서도 가볍게 바람처럼 살아가는 엄마의 인생과 닮아있어서 좋다.
+
비가 오기에 다시 한번 룸메이트와 전을 도전했다. 룸메가 산 김치가 잘 익어서 김치전을 했다. 이번에는 룸메가 굽고 나는 설거지를 맡았다. 룸메는 저번의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여러 번 작게 부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크기가 작은 여러 개의 김치 핫케이크가 나왔다. 누구의 부추 케이크보단 낫다느니, 이것도 만만치 않다느니 싸우다가 다음에는 감자전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우린 아직 전을 부칠 레벨이 아닌가 보다. 그래도 전을 먹을 때마다 같이 먹을 사람이 옆에 있었다는 건 큰 축복이다. 큰 그릇이 없어서 대신 반죽을 섞은 냄비에 다음에는 어떤 재료가 들어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