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글이 쓰고 싶다!"
이 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글이 쓰고 싶어 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 책상에 있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는 다들 "야, 취업도 아직 안 한 놈이 벌써 퇴사나 휴직 타령이냐?"며 핀잔을 주었다는 비하인드는 제쳐두고. 휴직 전, 후로 바쁜 일상에서도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에 내 손이 근질거리게 된다. 특히 아이들을 캠프에 보내고,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는데 '애매한 시간'때문에 배가 고파지는 장면에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님에 공감했다. 글 오래 쓰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카페에서 당이 부족해지는 그 곤란한 순간. 남성, 아버지, 멋진 회사를 휴직, 아이들과 여행. 그 어떤 해시태그에서도 나와 겹치지 않은 작가와 순간 "그래, 그렇다니까!"라며 하이파이브를 치는 느낌이 들었다.
브런치를 보면 퇴사가 유행 같다. 아직 취직도 못 한 이제 갓 대학 졸업한 나에게 그들의 퇴사 스토리는 너무 멋져 보인다. 하나같이 멋진 커리어를 많은 고민 끝에 던지고,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여행을 떠난다. 퇴사하고 싶어서 취직을 하고 싶어 질 정도다. 그런데 퇴사 말고 휴직이라니? 그것도 혼자서도 힘들다는 여행을 아이들과 함께 간다니? 당연히 읽어지고 싶지 않은가?
최호진 작가
은행원 출신의 금융맨, 회사생활의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휴직으로 도전. 휴직을 통해 회사생활의 '자신감'을 얻었다.
순간 나는 요리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 내 혀가 둔감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야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게 창피하지만 어찌 됐든 큰 수확이라면 수확.
개인적으로, 아주 평범하고 강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사람으로서. 이 책의 작가가 '좋은 아버지'만을 보여주지 않아서 좋았다. 물론, 솔직한 작가의 심정에 딸의 입장에서 불편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작가이기에, 극복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행에 가서 찌개를 끓이면서 자신이 요리를 안 한 것이라는 깨달음. 그 장면에서 나 또한 자취를 최근에 시작하면서 요리가 특정 영역이 아니라, 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내 모습과 닮아있었다.
"맞아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 생기겠지?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여행지에서 아픈 것만큼 곤란한 일도 없다. 하물며 외국에, 내가 아니라 자식이 아프다면. 수술을 무사히 마친 작가의 첫째 아들이 한 말에서 뒤통수를 맞았다. 나는 나쁜 일이 생길 때, 한 번도 '이제 좋은 일이 생기겠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에. 반성한다. 인생은 이게 끝이 아니다. 계속되는 것이다. 모든 인생과 여행을 한탄으로 보낼 수는 없다.
결국 좋은 직업이란 뚜렷한 기준은 없지만 어떤 마음을 갖고 일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나 이 짓거리 왜 하고 있더라? 졸업학년이었을 때, 아는 분이 내게 물었다. 왜 취직을 하려고 하냐고. 대학원도 있고, 알바를 다니며 여행을 다닐 수도 있고(물론 두 달 뒤 코로나가 터졌다.), 고시를 준비할 수도 있고, 청년창업을 지원받을 수도 있는데, 왜 하필 '회사'냐고. 그때 나는 졸업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던 중, 보람을 느끼고 있었기에 망설이 없이 얘기했었다.
"....!"
그러나 지금 얘기하라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은 어떻게든 최대한 인기 많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렸기에. 내가 무엇을 왜, 하려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 회사에 운 좋게 들어간다고 해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뻔하다.
중견 직장인인 작가의 회사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어찌 되었든 결국 '나'로 살아가야 하는 것 같다. 취업 준비생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너 자신을 알라"이다. 스펙이나 한계의 뜻이 아니라, 정말 뭘 하고 싶고, 무엇은 하기 싫은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그런데 중견 직장인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결국 인생은 무엇 하나 이뤘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연속적임을 알 수 있었다.
취업 준비생 (물론 제목 때문에 무슨 배부른 책이냐고 혼날 수도 있지만 가볍게 무시하라.)
왜 애들이 날 불편해하는지 감이 안 잡히는 아버지
그 외 글을 쓰는 사람들.(글이 쓰고 싶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