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공존.

감정과 생각의 덩어리는 무엇을 하든 따라오기 마련.

by ch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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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내 상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되겠다.

불안한 감정과 생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할 일을 최대한 미루지 않는다. 조급함에도 불구하고 몸이 안 좋으면 일찍 잔다. 조금 피곤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홈트레이닝을 하고 내일 할 일을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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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생각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게 거의 5년인가? 이젠 그 모든 것들이 함께 섞인 덩어리를 그냥 쳐다볼 수 있게 되어있다. 언제든지 나는 잠식될 수 있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그 덩어리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젠 인정한다.

그래서 내 요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사부작사부작하고 있다.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고 분류하기는 하지만, 거기까지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외에는 그냥, 내가 어떻게 해도 그 생각과 감정은 나의 옷처럼 자연스럽게 남아 있었다. 조금 오늘따라 불편한 옷을 입고 작업을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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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옷이고 가끔은 이불이고 가끔은 양말 한쪽 가끔은 팔찌나 발찌처럼 그냥 달려있는 정도다. 하지만 아예 없어진 적은 거의 없다. 없어지려면 그냥 상황이 뒤 바뀌어 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상황이 아예 변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데다가, 상황이 바뀌면 또 바뀐 상황에서의 생각과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내 몸에 입혀진다. 없애려고 부단히도 노력해보았는데 그럴수록 커져버렸다. 모자나 재킷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없애려고 할수록 이불, 커튼, 벽, 공기로 바뀐다. 흐르는 성질이 생겨버리면 남에게까지 튀거나 묻거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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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하자는 말이 아니다. 감정과 생각을 꼼꼼히 살펴보고 해결해야 할 때도 있다. 위의 이야기는 해결이 안 되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과 생각에 대한 얘기였고, 해결해야 할 때도 있다.

감정과 생각에 내가 휩싸일 때, 나는 일단 드립 커피를 내린다. 그리고 종이와 펜을 아무거나 잡고, 생각을 떨어트린다. 진정될 때까지 적는 게 아니라, 조금 긴 분량을 정해놓고 적는다. 예를 들면 한쪽 다 적는다던가. 이건 성인이 된 이후로 나를 끝내 살려낸 방법이다.

두 번째로는, 내가 무리를 하고 있다는 단서를 알아채야 한다. 물론, 이게 단서임을 알려면 여러 번 좀 아파봐야 한다... 하지만 꼭 아파야만 지혜를 얻는다면 슬프다. 내 단서는 아래와 같다.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안 쉰다.

뭔가를 하고 있는데 폰을 30분 이상 보고 있다.

잠을 자주 깨거나 너무 많이 자기 시작한다.

효율이 안 나는데 계속 붙잡고 있다, 본능적으로.

진짜 별 거 아닌데 갑자기 불같이 화가 난다.

이 외에도 기본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던가 잘 때 이를 간다던가... 그것들을 무시하면 며칠 내로 아주 멋있게 앓게 된다. 이럴 때는 그 덩어리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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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한가? 피곤한가? 무서운가? 불편한가? 그 모두인가?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인가? 도저히 모르겠으면 일단 쉰다. 그냥 잠을 자도 되고, 명상을 해도 되고,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도 되고, 가족들과 통화를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시간을 일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 써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모르겠다? 몰라도 괜찮다. 방금까지 워커홀릭 모드였던 사람이 시간을 자신을 위해 썼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을 테니. 이도 저도 안된다면 몸이라도 편해야지. 그렇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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