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재미없는 부분일 뿐이야.

그러니까 그냥, 일어난 일은 지나간 장면으로 만들자.

by chul
20200930_171910.jpg 이북 리더기를 샀습니다. 그런데 책은 안 읽고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재미없는 장면이라고 생각합시다. 흐름은 언제가 와요. 계속 이렇게 되진 않을 겁니다. 왜냐면, 맨날 무언가를 하고 있고 그건 곧 변화를 가지고 올 테니까요. 일어난 일들을 영화의 장면처럼 뒤로 보내버립시다.

오늘 병원에서 선생님께 전수받은 팁이다. 인생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나아갈 기미도, 나아질 기미도 없을 때, 그냥 좀 지루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팁.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201012112913_0_rotate.jpeg 재밌네요 요즘 이렇게 성능이 좋은 드로잉 어플이 많군요!


하지만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계속하던 일을 하다 보면 그건 곧 큰 변화로 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아직까지 내겐, 하루하루와 일상, 성실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는, 변화 없는, 무지한’과 헷갈리기 때문이다. 노력도 멍청하게 하면 안 되는, 마음껏 성실할 수도 없는 이 세상에서, 내게 ‘성실’이란 아픈 손가락이었다. 하지만 오늘 내게 필요한 말은 그게 아니라, 언젠가 변한다는 심심한 위로다.

그래,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라고 해도 늘어지는 부분은 존재하는 법이다. 내 인생을 영화라고 생각하면 지금까진 늘어진 부분은 거의 없었다. 어느 정도냐면, 친구들은 항상 나더러 ‘제발 생활툰 그려줘’라고 할 정도로 웃긴 일도 환장할 일도 많이 터졌다. (예를 들면 수능 때 커트라인 1점 차이로 대학에 합격했다)

20200930_175835.jpg 완성! 뿌듯!


항상 나는 가만히 있었지만 주변에서 몰아치는 삶을 많이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려고 몰아치는데 주변은 고요하다. 세상이 이렇게나 무거운 것이었나? 이렇게나 고요하고, 꿈쩍 않는 존재였나? 하지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바뀌긴 할 테지. 지금은 나를 지켜보는 관객들도 하품을 하고 있을 장면이다. 떨어지고 또 준비하고 또 떨어지고 또또 준비하고..

흐름이 바뀐다고 하자. 하지만, 나는 내 할 수 있는 일밖에 못한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떠날지도 모르겠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도 곧 질릴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믿어준 가족들이 용할 정도다.

sketch1601456334786.png 나쁘지 않은 퀄리티로 그려져서 맘에 듭니다.


때가 오지 않았다는 믿음은 나태일까, 기대일까. 그게 참 애매하다. 일단 지난 일들은 정말 보내줘야 한다. 재수 없고 슬프게도, 그건 사실이다. 이미 일어난 사실. 억지로 정체된 나의 인생. 항상 복닥 복닥 하고, 하루하루가 다르고 1시간 후가 달랐던 나의 인생은 아침부터 다시 침대에 눕기까지 아주 일정해졌다. 영화는 역방향으로 봐선 안된다. 지나간 장면은 지나간 채로 두고, 다시 오는 장면을 순방향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지루하다고 영화를 끝내서도 안된다. 적어도 나는, 내 영화니까. 지켜보는 사람들이야 나가던 다시 들어오던 그들 맘대로겠지만. 그래, 이런 늘어지는 장면도 있는 거지. 그래야 더욱 하이라이트가 빛날 테니까. 아니, 꼭 극적으로 변하지 않아도 돼. 조금씩 지금도 분명히 바뀌고 있다. 나는 내 영화에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결론까지 혼자 남아있게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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