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내 이력서 사진을 보고 다신 보기 싫다고 했다,

다름을 틀림으로 아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법.

by chul

요즘 자소서와 면접을 준비하고 있기에 습관이 된 두괄식으로 결론 먼저 던지자면, 오늘 내가 할 얘기는 이와 같다.

1. 남들과 다른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라.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면.

2.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은 못 해서가 아니라, ‘안’해서다.


오늘은 1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우울증을 겪은, 겪고 있는, 겪었던 사람들에겐 다양한 ‘스위치’가 있다. 많은 원인 중에 그것이 제일 큰 원인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남들과 같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의 오랜 부담이자 내 우울의 근원이었다.

취업 컨설턴트 담당 선생님이 바뀌었다. 사실 그 전 선생님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 느낌이라, 이번 선생님과 잘해보고 싶었다. 선생님께 이력서를 드리며 요즘 서류 합격률이 낮아져서 고민입니다,라고 했더니 이력서 사진을 바꾸라고 하셨다.

아.. 제가 몇 번 그 얘기를 들었는데요, 혹시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왜 안 바꾸셨어요?
그게..
몇 번 들었는데 왜 안 바꾸셨냐고요, 상처 받지 마세요.
딱 봤을 때, 다시는 보기 싫어요.
예..? 어떤 느낌에서요?

처음 만난 그는 내가 이유를 묻자 그게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느꼈던 건지(내가 그에게 도전할 이유는 무엇이며, 그래선 안 되는 이유도 모르겠고 기싸움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정말 다짜고짜 뺨을 때리기에 왜 때리냐고 물었을 뿐, 나는 내 뺨을 어루만지기에 바빴다.), 갑자기 디스랩을 하기 시작했다.

보기 싫어요 여성스러운 느낌도 없고 별로예요. 그리고 왜냐고는 왜 물으세요? 면접에서도 그러시는 거죠? 말투도 별로예요. 요즘 sky도 취직 안되고 스펙 엄청난 사람들도 서류 다 떨어져요. 여기 오는 사람들 전부 다 스펙이 엄청난데, 하물며 A(내 출신 대학) 대 공대잖아요. 아, 고등학교고 보니까 B도 출신이네, 그래서 말투가 그런가? (나는 여러 도를 다녔고 사투리는 다 섞여있다.) 왜냐고 왜 묻는 거예요? 그러니까 딱 봤을 때 같이 일하고 싶은 느낌은 안 들 것 같아요. 심지어 경력사항도 없어, 공백기 1년이야, 흠.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어떻게 했냐고?

울었다.

전날에도 내 나름의 최선을 다 했지만 내게 싸늘하게 군 사람이 있어서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생각하느라 밤을 새웠고, 스펙이 없다는 걸 넘어 처음 보는 40대 여성이 다짜고짜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해버렸기 때문이다. 초면에 완전히 분해되었지만, 자주 듣던 ‘넌 좀 부드러울 필요가 있어’라는 말이 떠올라서 계속 웃는 표정과 저자세로 들어가야 하는 내 상황이 화가 나서 그대로 그냥 울어버렸다.

왜 울고 그러세요?(아니 내가 왜냐고 물을 땐 난리 더니 지금 복기하니까 그분은 많이도 물어보셨네)
선생님께서 스펙 없다는 말을 넘어서 제 존재 자체에 무안을 주고 계셔서요. 너무 속상하네요.
제가 좀 많이 울려요, 원래 다 여기서 우는 거예요.

나는 어렸을 때부터 특히 선배나 선생님들 같은 윗사람들에게 ‘호불호가 갈렸다.’ 우리 엄마는 딱 , ‘예의는 바른데 기는 안 죽어서 그 사람들의 이상한 자존심을 건드려버렸다.’라고 파악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내게 ‘남들보다 조금 다름’은 큰 상처였고, 과제였다. 교복을 입었을 때까진 괜찮았다. 그때는 신기하게도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저마다 다른 행색을 숨기지 않았기에. 그런데 교복을 벗은 순간 ‘눈에 보이지 않은 교복’이 입혀졌다. 나를 오랜 우울과 심란에 빠트린 한 마디는 “남들은 하는데 너는 왜,”였다.

그렇기에 나는 남들도 나와 같다는 조각을 열심히 찾았고, 나도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그 조각으로 날 깎았다. 이는 얼마 안 가, 내가 자살예방전화를 걸도록 이끌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런 나를 어렸을 때부터 걱정했다. 그분들의 최선이란, 최대한 딸이 모나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미리 깎는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말을 하면 집에서는 ‘네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자. 분명 있을 거야.’라고 했다. 외로웠다. 나의 근본은 그때부터 외로움이었다.

가족과의 외식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더욱 겉돌았다. 집에서 겉돌았으니 밖에서도 겉돌았다. 세상은 나와, 세상으로 나뉘어버렸다.

상담을 받고, 많은 것을 겪으며 나는 나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를 다시 분해하는 계기가 취업준비였다. 맞추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었다. 스펙의 문제야 내가 잘 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도 못 한 곳에서 다짜고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니 더욱 버틸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눈물을 훔친 휴지를 어디에 버리냐는 물음에도 답하지 않고 당황했는지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는 그 휴지를 들고 나와 계단에서 기침을 해대며 울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울부짖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그렇게 내가 이상하고 잘못되었다면 나는 신고를 당해서 어딘가에 갇혀있어야 하는 사회악이 아닌가? 이제 곧 서른인데, 이런 사회악은 신고를 당해야지. 갑자기 지나가던 사람을 때리던 사람도 멀쩡히 돌아다니는데. 내가 모든 사람과 이런 것도 아니고, 내가 문제를 일으킨 것도 없고, 나는 대학도 무사히 졸업하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잘 살아가는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엄마는 여전히 ‘너를 받아들여야지’라는 말을 하겠지. 그러나 엄마는 얘기했다.

철경아, 그거 때려치워. 엄마가 잘 못 생각했어. 그냥 살자. 그냥 살아가자. 그 사람이 잘못했어. 엄마도.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깎아내리는가? ‘꼰대’라는 단어가 있는 한국에서, 개성 좀 강하다 싶은 젊은이들은 나와 같은 일을 자주 겪었을 것이다. 왜 너는 왜 너는 쟤는 안 그러는데 왜 너는!

우린 쟤가 아니니까.

우린 ‘나’이기에.

한번 생각해보자. 비록 이 한국이 범죄자들에게 관대하긴 하지만, 내 다름이 틀림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올 수 있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누군가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직장을 가진 능력자일 수도 있고, 대학을 나온 나 또한 누군가의 꿈을 이룬 사람일 수도 있다. 꼭 ‘스펙’이 아니어도, 우리가 말을 하는 순간 모두에게 총알이 날아올 정도로 잘못된 사람이라면 우리가 살아올 수 있었을까? 아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가 컨설턴트인데 취준생이 저자세가 아니라고 다짜고짜 보기 싫다는 사람도 멀쩡히 40년 살아가는데 우리가 살아가지 않아야 할 이유는?

그 이유는 누가 정하는가?

왜, ‘왜?’

진짜 ‘왜’를 묻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우리가 무너졌을 때, 우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성해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자신만의 편이 되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그때는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컨설팅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그렇게 원했던 기싸움을 할 생각도 없다. 앞으로 볼 일이 있으면 적당히 예예 그러십셔하고 한마디도 듣지 않고 나오려고 한다. 이제 나는 이런 꼼수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실컷 울고, 엄마에게 당장 나오라는 말을 듣고, 내가 우는 것을 본 카페 사장님이 내게 마카롱을 주고, 그걸 훌쩍거리며 다 먹으면서 맛있다고 하고,

‘아이, 이 세상에서 나만 나 좋아하네.’

라고 생각하며 코를 풀었다.


+다음은 이 일화로 생각난 두 번째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