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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an 17. 2021

친구가 '베풀 수 있나'?

친구 사이에서 함부로 동정하지 말자.

이 매거진에는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리고 솔직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꺼내볼까 한다. 고백과도 가까운 이야기이다. 

올해 나는, 함부로 친구를 동정했다. 처음에는 고생이 많다고 생각하여 기프티콘을 보내고, 먼저 전화를 걸어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이건 우리 사이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는 내게 많은 것을 캐내려고 하였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지금 살고 있는 월세, 생활비, 용돈을 얼마나 받는지, 인턴 월급은 얼마인지까지. 지금까지 내 인간관계에서 그 누구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굳이 묻지 않았던 것들을 파해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나의 약간의 대답과, 대답하지 않은 반응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나를 여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는 좀 더 나아 보이는 (내가 직접 얘기한 적은 없지만 아마 그가 예상하건대 조금 더 경제적으로 나아 보이는 나.) 내가 양보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같이 산 물건이나 더치페이를 하기로 하고 먼저 내가 돈을 내었을 경우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 말도 없이 1주일은 지나서야 돈을 보내주곤 하였다. 자신이 밥을 사겠다고 말하며 약속을 잡은 날에도 당일에는 아무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건 쌍방 잘못이고, 시작은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알 수 없는, 친구사이에서는 재서는 안 되는 무언가로 서로를 정의 내려버리고, 주고받는 것의 방향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경제적인 부분에서야, 나도 여의치않기에 안 주거나, 못 받은 돈은 재촉하면 된다. 그러나 잘못 설정된 이 관계의 방향이 주는 영향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그는 나에게 성질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가 나보다 힘드니까 내가 받아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머릿속에

'얘는 나보다 잘 사는 것 같으니 내 응석을 받아주겠지?'

'얘는 힘들어 보이니까 내가 응석을 받아줘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잘못된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형성이 되어버렸다. 


그는 아무 때나 전화를 걸고, 자신의 피곤함만 얘기하다가 끊어버렸다.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면 나의 메시지는 읽지 않았다. 대화가 끝났다는 말 또한 없었다. 괜히 내가 눈치를 보다가, 나름대로 농담을 던지고 분위기를 완화해보려고 해도 예민해진 그는 화를 냈다. 내가 광대가 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내가 싸늘하거나 적당히 대꾸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갑자기 미안하다며, 힘내라고 기프티콘을 보냈다. 하지만 이젠 그만하기로 했다. 그리고 인정하기로 했다.

이건 나의 잘못이 시작이라고.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이건 친구가 아니라고.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가 얼마나 잘 산다고. 우리 집은 절대 여유롭지 않고, 가족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힘든 상황인데, 내가 뭐라고 함부로 누군가를 동정해서는. 나도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며칠 동안 끙끙 앓는 사람인데 멘탈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감정 쓰레기통을 자처했는지. 

관계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둬야 함을 살짝 잊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그 친구의 모든 전화나 메시지를 무시한다거나, 차단한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작정 관계를 끊는 것이 정답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차단이 답일 때도 있지요.) 천천히, 나의 하루에서 그 친구보다는 나의 생각,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의 생각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미안하지만, 너는 소중하고 재밌는 사람이지만, 내게 일정 크기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없어. 네가 약해서가 아니라, 네가 타인이라서야. 

매거진의 이전글 내 불행이 네 위로가 된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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