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ul Feb 06. 2021

우는 내게 엄마는 영양제를 먹으라고 했다.

내 삶에 대한 정성이 내 삶을 살리는 중이다.

여기저기 치이느라 정신이 없고, 나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엄마는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전화기 넘어, 엄마는 아주 확신에 차고 진지하고 강한 목소리로,

꼭 영양제 먹어

라고 했다.

긴장이 풀리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야 그게,
그럴 때일수록 너는 절대 기죽으면 안 돼. 절대로 나가떨어지지 마. 푹 자고 맛있는 거 먹고 운동하고 영양제 먹고 잘 씻고. 나도 아빠도 너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네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고 옳은 사람임을 알고 있어. 지들이 뭐가 됐다고 내 딸한테 그러는 거야? 너를 제일 잘 챙겨야 해. 속상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한테 꺾일 필요 없어. 잘 보일려고도 하지 말고 너는 너대로 유들유들하게 다녀. 너무 곧고 강하면 부서지는 거 알지? 심각하게도 진지해지지 말고 하지만 체력과 정신력만은 널 위해서 챙겨.
그러니까, 영양제 챙겨 먹어. 다 떨어지면 얘기하고.

엄마는 항상 그랬다. 힘이 빠지고 긴장이 풀리는 어이없는 말로 내 가장 강한 힘이 돼주었다.

아직 인턴이고 정규직이 확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힘이 없다. 그냥 주어진 실습을 하면서 동기들과 이야기하며 적당히 커피를 얻어마시는 정도. 그런 인턴이기에 나의 사수님과 사수님의 상사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잘못된 지 모르고 그저 불려 가서 혼이 날 뿐이다.

다른 인턴들은 별 일이 없이 잘 다니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유독 못해서 이리저리 불려 나가고 혼나는 걸까. 정규직이면 이것도 하나의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지만 그저 인턴일 뿐인 내게 왜 이렇게 지치고 질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이러다가 나만 똑 떨어지는 걸까.

철경아.
응.
혼자 떨어져도 괜찮아.

이런 말을 들으면 그냥 한번 픽 웃으며 어깨가 풀린다. 그럼, 어디서든 다시 시작하면 돼. 나는 또 누군가를 실망시키겠지. 나 자신이 실망스러운 일도 생길 것이다. 그럴 때일수록 결국 남는 건 나 자신이 오랜 기간 동안 나도 모르게 쌓아온 체력과 정신력, 내 삶에 대한 정성. 슬프고 막막한 것들이 내 하루를 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가 '베풀 수 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