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과 상태는 다르다.

휘몰아치는 상황 안에서 상태 유지하기.

by chul

엄마는 불행과 행복은 자신이 결정하는 거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상황과 상태는 다르다.

다시 취업준비를 하는 지금,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딱히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필 만나는 사람마다 이미 좋은 기업에 들어갔거나, 정규직이거나, 여하튼 어쩔 수 없이 묻지만 서로 할 말이 없는 그런 물음이다. 듣는 사람도 대답할 사람도 정해져 있다. 잘 지내기가 힘들지만 묻는 그런 안부.

솔직히, 상황은 진짜 안 좋아. 우리 집이 부자도 아니고, 나는 충분히 지원받았고 더 부모님께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래도 상태만은 나쁘지 않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상황이 좋지만 상태가 나빴던 적이 있다.
상황이 안 좋지만 상태가 좋았던 적도 있다.
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냥 상태만이라도 좋게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상황이 좋지만 상태가 나빴던 때,

둘 다 안 좋은 것보단 훨씬 낫다. 하지만 나의 경우 상황이 좋은데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할 때, '대체 잘 지내고 있고 풍족한데 뭐가 그렇게 힘든 거야, 이건 힘든 게 아닌 거야, 내가 유난인 거야'라며 상태 자체를 부정했다. 무슨 문제든 그 해결 과정은 문제를 인정하고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아예 시작점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몇 년째 가라앉아만 있었다.
후회하냐고요?

아니다. 이건 단점 같은 특성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그랬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나쁜 상태에서는 빨리 빠져나올수록 좋다.
얼른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해서, 가 아니다. 물론 상태가 좋아지면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쁜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 그 상태에서는 당신이 너무 괴롭다. 둘, 그 상태에서는 내가 지나치는 행복이나 즐거운 요소, 혹은 앞으로의 삶을 달라지게 하는 기회 같은 것들이 많다. 내가 바닥을 보고 걸으면 지금 핀 벚꽃은 평생 보이지 않는다. 괜찮은 맥주 한 캔 들고 봄바람을 쐬는 계획은 내 머릿속에 전혀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못 마신다. 집에서 창문 열고 마시세요...라고 적다 보니 미세먼지도 많다. 여하튼 엉망인 글이지만 당신이 유난히 상태가 안 좋다면 인정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들이 보이는 순간, 나쁘지 않은 상태가 된다. 상황이 안 좋은 건? 그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함께 일단 살아보자.

상황은 최악, 상태는. not bad

내 상황이 정말 좋지 않다. 어제 대기업에 합격한 친구랑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이야, 하면 할수록 나와 그들의 입장 차이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사람들은 만나지 않아야겠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지, 뭘 더 해야 할지 생각해봐도 답이 없을 때, 나의 상황이 실감이 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운동도 한다. 예전만큼 일찍은 못 일어나지만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고 규칙적인 시간에 잔다. 예쁜 공책을 샀다. 디카페인 드립백에 도전해본다. 같이 사는 친구들과 가끔 해야 할 일 미루고 얘기하면서 맛난 밥을 먹는다. 좋아하는 카페에 간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 외에도 체력과 시간이 남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나쁘지 않은 상태다. 누군가는 나더러 대책이 없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대책 없는 건 내가 아니라 이 뭐 같은 상황이다. 상황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된다면 신이겠지. 나는 과거를 돌릴 수도 없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당장 가질 수도 없다. 내 사소한 행동으로 미래가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다. 자주 막막하다. 그래서 억지로 희망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가사 없는 멜로디일 뿐이니까. 그냥 나쁘지 않은 상태로, 가끔 답지 않게 좋은 상태로 오늘 할 일들을 해나가면 시간이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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