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취업준비를 하는 지금,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딱히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필 만나는 사람마다 이미 좋은 기업에 들어갔거나, 정규직이거나, 여하튼 어쩔 수 없이 묻지만 서로 할 말이 없는 그런 물음이다. 듣는 사람도 대답할 사람도 정해져 있다. 잘 지내기가 힘들지만 묻는 그런 안부.
솔직히, 상황은 진짜 안 좋아. 우리 집이 부자도 아니고, 나는 충분히 지원받았고 더 부모님께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그래도 상태만은 나쁘지 않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상황이 좋지만 상태가 나빴던 적이 있다. 상황이 안 좋지만 상태가 좋았던 적도 있다. 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그냥 상태만이라도 좋게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상황이 좋지만 상태가 나빴던 때,
둘 다 안 좋은 것보단 훨씬 낫다. 하지만 나의 경우 상황이 좋은데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할 때, '대체 잘 지내고 있고 풍족한데 뭐가 그렇게 힘든 거야, 이건 힘든 게 아닌 거야, 내가 유난인 거야'라며 상태 자체를 부정했다. 무슨 문제든 그 해결 과정은 문제를 인정하고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아예 시작점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몇 년째 가라앉아만 있었다. 후회하냐고요?
아니다. 이건 단점 같은 특성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그랬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다. 나쁜 상태에서는 빨리 빠져나올수록 좋다. 얼른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해서, 가 아니다. 물론 상태가 좋아지면 생산적인 일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쁜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 그 상태에서는 당신이 너무 괴롭다. 둘, 그 상태에서는 내가 지나치는 행복이나 즐거운 요소, 혹은 앞으로의 삶을 달라지게 하는 기회 같은 것들이 많다. 내가 바닥을 보고 걸으면 지금 핀 벚꽃은 평생 보이지 않는다. 괜찮은 맥주 한 캔 들고 봄바람을 쐬는 계획은 내 머릿속에 전혀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못 마신다. 집에서 창문 열고 마시세요...라고 적다 보니 미세먼지도 많다. 여하튼 엉망인 글이지만 당신이 유난히 상태가 안 좋다면 인정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하고 싶거나 해야 할 일들이 보이는 순간, 나쁘지 않은 상태가 된다. 상황이 안 좋은 건? 그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나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함께 일단 살아보자.
상황은 최악, 상태는. not bad
내 상황이 정말 좋지 않다. 어제 대기업에 합격한 친구랑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이야, 하면 할수록 나와 그들의 입장 차이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사람들은 만나지 않아야겠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지, 뭘 더 해야 할지 생각해봐도 답이 없을 때, 나의 상황이 실감이 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운동도 한다. 예전만큼 일찍은 못 일어나지만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고 규칙적인 시간에 잔다. 예쁜 공책을 샀다. 디카페인 드립백에 도전해본다. 같이 사는 친구들과 가끔 해야 할 일 미루고 얘기하면서 맛난 밥을 먹는다. 좋아하는 카페에 간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 외에도 체력과 시간이 남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나쁘지 않은 상태다. 누군가는 나더러 대책이 없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대책 없는 건 내가 아니라 이 뭐 같은 상황이다. 상황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된다면 신이겠지. 나는 과거를 돌릴 수도 없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당장 가질 수도 없다. 내 사소한 행동으로 미래가 얼마나 바뀔지는 모르겠다. 자주 막막하다. 그래서 억지로 희망을 노래하지도 않는다. 가사 없는 멜로디일 뿐이니까. 그냥 나쁘지 않은 상태로, 가끔 답지 않게 좋은 상태로 오늘 할 일들을 해나가면 시간이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