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유난’인 내 이야기이다. (새삼스럽다.) 왜 유난이라는 단어를 골랐냐면,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어에 ‘요란스럽지만 별 거 없는’이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그거 정말 나다. 눈에 띄지만 사실 별 거 없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이래 봬도 대학까지 무사히 졸업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닌데 처음부터 눈에 띄는 바람에 다들 ‘잘할 것이다. 그래서 눈에 띈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살펴보면 나는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쏟아지는 의아함과 안타까움이 섞인 시선들. 그 시선이 너무 싫어서 항상 ‘또 안쓰러운 사람이 되면 어떻게 하지…?’하며 도망쳤다.
정규직이 되지 못했을 때도 다들 날 안쓰러워했고, 정신건강 의학과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된 사람도 나를 안쓰러워했고, 대학 친구가 많이 없다는 나를 안쓰러워하고... 그냥 내 삶 자체가 유난하고 안쓰러운 삶인가 싶을 정도로 별별 동정을 다 받았다. 물론 위로도 있었다. 그러나 위로와 동정과 안타까움과 유감은 경계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상처가 되는 위로를 받다 보니, 여기저기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납득시키기 위해 (나 정말 괜찮다니까! 물론 힘들지만 그런 눈으로 볼 정도는 아니야!) 온갖 말을 하고, 그다음부터는 그냥 입을 다물고 피곤하게 웃어 보였다. 누군가를 안쓰러워하고 있을 자신의 위치를 나로 하여금 실감하고 있는 건가 하는 나쁜 착각도 들었다. 어느 쪽이든 본인들만 알 것이다. 본인들도 모를 수도 있고.
어쨌거나 결국 안쓰러운 사람이 되었다. 남들이 내게 느끼는 감정이나 인식마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자존심이 상한다. 그리고 막막해진다. 평생 이렇게 사는 건가? 그럴 수는 없는데. 눈에 보이는 건 내가 안타까워 보일 수밖에 없는 위치의 친구들과 동기들뿐이다.
괜찮은 척하지 마, 제발.
아주 오랜만에 ,5년 만에 친구와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세월이 무색하게 들켰다. 워낙 다들 안쓰러운 사람 취급을 하길래, 여기저기 숨고, 쿨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에 익숙해졌다. 동정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공감과 속상함 그리고 내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뒤섞인 그 꾸중을 듣고, 나는 눈이 떠졌다.
괜찮지 않아. 나 정말 안 괜찮아. 그런데 어쩔 수 없었어. 괜찮지 않아 보이면 다들 동정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니까. 내가 힘드니까 떠나버린 관계도 있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 그런데 그건 그들이 선택한 거라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그냥 오늘 할 일만 바라보고 살뿐이야. 이러다 보면 바뀔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어쨌든 안쓰러운 사람이 되겠지. 항상 눈에 띄고, 못하고(정확히는 성장히 더디고) 유독 혼나는. 유독 미움받고 유독 사랑받는 그래서 나를 모두가 안쓰러워하겠지.
그래서 나는 눈 앞의 일만 하기로 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포기했다. 그래서 태평하다는 오해도 받는다. 하지만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고, 때가 되어 달려 나갈 준비도 되어있다. 그러다 보면 바뀌지 않을까? 2년 전의 물도 못 마시던 나와 지금 밥 잘 먹고 운동하며 건강한 내가 다른 것처럼. 몇 개월 뒤에 나는 '아이 참 막막했지~ 지금은 이렇게 바쁘지만~'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살아봐야지. 제가 한번 이 방법으로 살아보고 여러분께 몇 달 뒤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안쓰러운 제가 괜찮은 인생 한번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