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고 도망갔다가 다시 한다.
그만 할까, 그냥 다 그만둘까.
책상 위에서 플랭크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눈 앞의 일이 더럽게 하기 싫단 뜻이다. 어디서 본 건데, 플랭크는 버티는 게 아니라 바닥을 미는 거라나. 책상을 박차고 나가지 않고 책상을 미는 정도로 일단 앉아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유난인 나는 그저 할 일을 찾아서 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무리 에피소드가 많은 나라고 해도, 하루하루 1분 1초가 다양한 일이 벌어지면서 계속 감정 소모를 한다면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다. 가끔 눈 앞에 벌어진 일들이 정말 왜 굳이 나였나 싶을 정도로 벅찰수록,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한다. 워커홀릭과는 조금 다르다. (게다가 저는 백수거든요) 정말 하기 싫어도 그냥 눈앞에 일을 한다. 그리고 계속 그 일을 하고, 나중에는 그 일을 내 일상이나 습관으로 녹여들어오게한다. 이렇게 말하니까 거창한데 그냥 할 일이나 제 앞가림이나 한다.
정규직이 되지 않았을 때, 푹 쉬고 일어나서 취업 카페에서 공고를 찾았다. 동기들은 이제 볼 필요가 없고 나도 몇 달 동안 쳐다보지도 않았으며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고 사이트를 보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연한 감정이다. 하기 싫을 수밖에 없다. 익숙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잠시 나갔다가 괜히 커피도 사 마시고 타마시고 그냥 카페에서 다른 거 하고 놀고 약속도 잡았다가 다시 앉아서 공고를 봤다. 그게 지금 해야 할 일이니까.
하기 싫거나 하기 무서운 모든 감정도 전부 짊어진 채로 한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이 감정은 항상 따라올 게 뻔하다. 어차피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감정이라면 그냥 있는 그대로 두고, 또다시 책상 위에서 플랭크를 하면 된다. (안된다. 바닥에서 하시길)
하지만 가끔은, 아주 자주는,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다. 과거의 많은 일들이 나를 다시 덮쳐오고, 미래가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 않을 때. 그럴 땐 유난을 떨자. 유난은 그럴 때 떨라고 있는 단어다. 내일은 전시를 보고 서촌에 갈 것이다. 비싼 밥과 커피를 먹고 전시도록도 구매해야지. 그리고 다시 도서관의 그 자리에 앉아있겠지. 또,
그만둘까. 하지만 대체 뭘.
이라고 투덜거리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니까. 의욕이 타오르던 때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의욕이 타오를 때까지 기다릴 순 없으니. 그냥 안 그만두고 오늘도 할 일이나 하자. 나쁘지 않은 하루 마무리가 될 것이다.
오늘도 도서관 책상에서 플랭크를 했다. 겨우겨우 뭐라도 하나 써내고 문제 하나라도 더 푼 것 같긴 한데, 제대로 한 건지는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 했다는 것에만 의의를 둬야 할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