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되기 위한 여정

외로움에서 발버둥 쳐서 살아온 건가요

by chul


결국 내 인생은 소속을 찾기 위한 여정이 아닐까? 사람은 받아들여져야만 살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고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거기서 딸려오는 천문학적 규모의 외로움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나도 외로운데.


유난인 나를 인정하고, 내가 우울증임을 인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울증임을 인정하자마자 나의 유난인 과정들은 그 안에서는 ‘보통’의 과정이 되었다. ‘증상’이나 ‘현상’이란 말이 붙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남들이 보기에 나의 모든 일은 그저 증상이나 현상일 테니까. 가끔은 나란 존재는 남에게 그저 관찰대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많은 유대를 쌓았어도 결국 그 사람에게 나는 하나의 주변 상황일 뿐이니까.

요 몇 년 새 심해진 나의 증상들이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주 보편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낯설었다. 소속감이라던가, 나도 남과 같다던가, 공감이라던가, 받아본 적이 많이 없었다. 특이하다거나 왜 유독 너만 그러냐던가, 그런 소리가 더 익숙했다.

어쨌거나 평범한 우울증을 가진 사람답게, 나는 살아가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일을 해내야 했다.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많은 결심과 일을 해야 한다면, 남들은 그냥 학교에 갔다. 강의실 문을 열기 위해 눈을 꼭 감고 결심을 해야 했다면, 남들은 그냥 문을 열었다.

그래서 외로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난한 나의 이야기들이지만 누군가에겐 자신과 같을 수 있으니까.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외로움이나, 소속을 향한 욕망이 아닐까 싶다. 남들은 나더러 ‘평준화를 요구하는 한국과는 맞지 않아’라고 했지만, 정작 남들과 다르고 싶지 않은 내가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 아닌가. 누군가와 공통점이 있으면 거기에 집착했고, 그게 나의 사람들이 지쳐서 떨어지는 요인이 되었다. 더 빨리 알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누구와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국 남들과 다르지만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 나도 그랬다는 점에서,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남들과 같았다. 주변을 보면 오히려 무난해서 유난해진다. 유난히 열심히 하고 유난히 힘들게 노력하는 것이 무난한 사회니까.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해서 안달나있고 소속되어있는 사람들이 무난하니까. '최고'가 무난이 된 이 상황에서 자주 '최악/최저'를 맡고 있는 나는 어디로 소속되게 될까?


어디로든 가게 되겠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가게 될 지도 몰라. 하지만 또 거기서 살아가고 있다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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