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카페인데, 왜인지 그냥 혼자 카페를 갔다. 예전에는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혼자 무언가를 못 하는 거랑은 달랐다. 그냥, 혼자서 하면 다들 날 비웃는 것 같았다. '쟤는 다들 친구 있는데 혼자 친구가 없는, 그런 유난한 사람이야'라고. 하지만 카페를 가기 위해 우산을 펼쳤다. 비가 왔는데, 그 카페는 꽤나 구석에 있어서 찾는 도중 우산도 뒤집어지고 여하튼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고 겨우 카페에 갔다. 그 날이 내가 처음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 날이었다.
나는 이 시간이 좋아.
하지만 누군가가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좋을 것 같았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지만, 생각보다 나는 혼자를 잘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친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나를 피하거나 내가 도망쳤던 수많은 얼굴들을 생각해보았다. 놀라운 건, 그들이 뭘 좋아했는지, 어떤 순간에서 그들과 함께 웃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나는 구색 맞출 관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독이 되고 실례가 되는 행동이었다.
남들의 시선에 이상하지 않은 구색을 맞추다 보니 이상한 스텝을 밟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결국 남들 눈에 나는 유난이고, 망한 사람이었다. 어차피 망한 거 간지 나게 망해야 나만이라도 조금 덜 괴롭지 않겠는가. 그렇게 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서 불면증을 호소했다. 엄마와 긴 상의 끝에 집에서 쉬면서 심리상담을 받았다.
지금 내 상황이 좋아서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본보기가 되면 좋겠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하위계층인 나이 먹은 백수 (그것도 채용형 인턴 최종에서 혼자 탈락한)다. 결국 유난일 수밖에 없던 나의 삶.
하지만 나는 살아있어. 몇 번이나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하고, 그게 안돼서 죽어보려고도 했고, 그게 또 실패하여 다시 보일러 소리가 울리는 방 안에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어, 살아남았고, 살아왔다. 유난이라는 병을 고치는 대신 무난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병을 고쳤다.
유난은 여기서 비난받기 좋은 나의 특성이자 개성이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이 인생을 살아남았는지 얘기하고 설명하면 그 비난을 무를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러지 않는다. 기회가 주어진다면(지금 브런치에서 이렇게 주절주절 거리듯이) 해보겠지만, 그 기회를 억지로 찾지는 않는다. 너무 비장해봤자 죽음만 남는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는 삶이 남았으면 좋겠다. 그게 누군가 보기에 유난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