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틀어져도 결국 살아있음이,

유난한 사람도 유난한 하루가 있다.

by chul

유난하다는 말을 듣는 나 같은 사람도 유난한 하루가 존재한다. 큰 불행이 닥친 하루를 유난하다고 생각은 잘 안 하고, 보통 이런 하루다.

10분만, 하다가 1시간 늦게 일어나서 피곤하게 도시락까지 쌌지만 도서관에 내가 좋아하는 자리는 없다.

오늘따라 내 뒷자리에 시끄러운 사람이 앉아서 내내 신경 쓰였다.

쓰려고 했던 공고가 조기 마감되었다.

힐링을 위해서 카페를 갔더니 유명 아이돌 생일 이벤트를 하느라 테이크아웃만 하고 튀어나왔다.

집에 와서 쉬려 했더니 기운 빠지는 내용의 카톡이 왔다.

기다리는 카톡은 안 온 지 한 달째다.

물론 이런 기운 빠짐은 큰 불행이 있고 나서 모든 것들이 틀어져 보이기 때문에 발생한다. 너무나도 별 거 아닌 일이지만, 이대로 내 인생이 계속 틀어지고 있다는 불안감에 눈 앞의 일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불안해서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은 그런 하루.

되새김질이라는 자해를 하는 그런 하루. 이런 유난한 하루는 1분 1초 나를 천천히 가라앉힌다.

새삼스럽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최대한 살아있음에 집중하려고 한다. 죽으려고 했던 날들을 떠올린다.


예전에도 한번 글을 쓴 적이 있다. 코난이라는 만화에서는 청산가리로 살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친구와 코난 얘기를 하다가 청산가리 얘기가 나왔고,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그냥 호기심에 검색을 했다.

자살 방지 번호들이 떴다. 아마 청산가리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그렇게 넘기려는데, 그중 한 번호의 색이 회색이었다.

하이퍼링크 같은 경우, 보통 눌러보지 않고는 파란색으로 뜨다가 한번 누르면 회색이 된다. 그 순간에 기억나지 않았고 한참 뒤에 기억이 났다. 내가 그 번호를 누른 적이 있음을. 지금은 낄낄거리면서 우연히 발견한, 게다가 떠올리기까지 한참이 걸린 그런 바랜 기억일 뿐인데. 그때 나에게는 삶 전체가 달려있었다.


지금은 정말 답답하고 앞으로를 기대하는 것조차 에너지가 들지만, 나의 과거에는 분명 '그때 죽지 않아서 다행이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그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지금은 삶에 겨우 매달려있고 순간순간을 연명하는 정도다. 그렇지만 미래의 나는 분명,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고마워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는다.

집에 와서 밥을 만들어먹고, 운동을 하고, 글을 썼다. 그것만으로 유난했던 하루가 무난하게 끝을 맺는다. 내가 무력한 건지, 아니면 힘이 있는 건지 헷갈리는 요즘이다.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나날이 있다. 지금은 그래도 아침이 무섭지는 않다. 번거롭기는 해도. 나는 유독, 그러니까. 유독 좀 느리니까. 언젠간 누구나 하고 있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거야. 이런 나날들이 있었다는 것도 까먹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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