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난하고싶은 유난한 사람.

꼭 돌아가게 되고, 늦게 되는 그런 나란 사람.

by chul

모두가 무난하게 가는 길을 왜 나만 유독 이렇게 어렵게 가야 하나 싶을 때가 있지.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날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었던 부장님이 한 말씀이다. 저 한 문장을 듣고 나는 탄복했다. 결코 짧지 않은 20대 후반인 나의 인생을 하나로 요약하자면 저 말이 될 수 있고 그걸 한방에 파악한 눈 앞의 부장님을 보며 '부장님 정도 되면 그런 능력이 생기나요?'하고 물을 뻔했다. 너무 감동 먹어서 저 말을 내 묘비명으로 써도 되겠다 싶을 정도이다.

저 한마디를 듣고, 나는 이 주제로 브런치 북을 발행하자고 결심했다. 유난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이 나라에서 유난히 힘들게 길을 돌아가는 나와 혹은 비슷한 누군가의 이야기들을.


다들 행복하다는 신입생 때 유난히 견디지 못하고 반수를 택했고 복학했다.

두 번째 1학년 때는 미친 듯이 공부하다가 2학년 때부터 고장 나기 시작했다.

다들 쉽다는 거 항상 남들보다 1,2년은 늦게, 유독 힘들어하면서 끝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들 다 하는데 너는 왜.


인턴 도중, 중간만 가면 된다, 는 말에 나는 묘한 불안함을 느꼈다. 만화로 치면은 ''해치웠나?''급의 불안한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저주와도 같은 말이다.(사망 플래그라고도 한다.)


실제로 인턴은 대부분 전환되었다. 정말 꼴찌 수준이 아닌 한 무난하면 다 정규직이 되었다. 유난히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혼나고 혼자 못했던 나는 당연히 , 아니 그렇게 소란을 피운 것 치고는 허무하게 전환되지 않았다. 정규직이 되어서 프로필 사진에 회사 사원증을 걸고 있는 동기들이 부럽냐고 누가 묻는다면, 혼난다 진짜, 당연히 부럽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허무함과 허망감이 더 오래 남는다.

하지만 나는 그냥 못했을 뿐인데. 못했지만 유난히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내가 여기저기 큰 소란을 피우고 다닌 것도, 누군가를 험담한 것도, 질투한 것도 아니다. 나는 그냥 밥을 먹고 일을 했고 그런데 갑자기 불려 가서
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라
라는 말을 들었고, 누군가는 그 불려 감이 편애라 생각하여 여기저기 말을 퍼트리고 다녔다. 떨어트릴 사람이면 그냥 내버려 두지 나는 유독 상사분들께 불려 가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들었다. 그 피드백은 내가 인턴을 잘 마무리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도움과 내 터닝 포인트의 엔진이 되었음은 틀림없다. 정규직 전환에서는 큰 영향이 없었을 것 같지만.
어쨌거나 빈수레는 요란했다. 하지만 요란한 빈수레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일단 나도 꽉 찬 수레가 되고 싶었을뿐더러, 뭐가 많이 들은 수레보다 빈 수레 안에 물건을 넣으면 소리가 더 요란하게 나는 것은 당연하다. 좋아서 요란하고 유난히 눈에 띈 게 아니다.

그저 특성이죠, 특성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른 것이죠.

20대 초반, 또 유난히 대학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고장 났던 때, 상담 선생님께 이런 말을 들었다. 눈에 띈다는 것이 꼭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나의 수많은 특성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무 난과 인내를 강요하는 한국사회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사람인 나는 참 별 꼴 다 보며 살아왔다.

이런 글을 쓰는 지금은 성공해서 유튜브 섬네일에 '유난한 내가 성공한 재산가가 된 이야기' 혹은 '청춘이여, 유난해라!'같은 동영상의 주인공이 되어 있어야 하겠다. 안타깝게도 지금 백수다. 그나마 인턴 경험을 곁들인.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기는 할지 자신이 없다. 그냥 브런치에서 맨날 퇴사하시는 삶이 재미없어서 더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는 직장인 1이 되고 싶을 뿐이라고요! 하지만 나는 일단 내 일을 찾고 있다. 재수 없고 괴로운 일들을 과거로 보내기 위해, 요즘은 맞이하기보다는 보내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인턴을 마치며 사수님과 부장님께 드릴 선물을 포장하고,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 모든 안타까운 일이 부장님께도 차장님께도 제게도 그저 추억거리가 되도록 저는 잘 살아가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마지막 편지까지 유난이었다. 잘 살아가기는 무슨 그냥 취업 준비하는 건데.


어쨌든 우리 엄마는 항상 내게

'눈에 띄어서 부럽다~. 엄마는 눈에 띄고 싶었어. 유쾌하잖아.'

라고 한다.

그러면 움츠러든 마음도 펴지며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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