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걸릴 만큼 걸릴 것이다.
왜 그렇게 조급할까요?
내가 조급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그 조급함이 많은 것을 망치기 때문에 ‘조급하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 말을 했을 때, 나는 지금까지 조급함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순히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게 조급함이 아니었다. 나의 조급함이란, 당장 내일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나는 당장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지금 당장 무언가가 나와야 했다. 오늘 서류를 넣었으면 내일 당장 결과가 나오길 바랬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면접 결과가 나오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함에도 왜 당장 나오지 않느냐며 불안해했다. 심지어 내가 취업 준비를 한 기간이 1년을 넘어 버렸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당장 무언가가 내일, 오늘, 아니면 어제(?)라도 나오거나, 나왔거나, 나왔어야 했다.
“너에게 6개월이 남아있잖아, 올해 취업을 하기 위해서”
엄마에게 이 말을 들은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니, 6개월이나 남아있다고? 6개월이 지난 게 아니라? 그래서 당장 오늘내일 성과를 내야 하는 게 아니라 6개월이나 남아있다고?
“그럼 작년에 왜 기사 자격증은 따지 않았어? 시간은 충분했을 것 같은데?”
친구의 순수한 의문이다. 1년 동안 취업준비를 하면서 기사 자격증은 계획하지 않았냐는, 그냥 순수한 질문.
아, 나는 그러니까. 음. 당장 취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야, 취업이 하루 만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 회사 최종 합격까지 적어도 두 달은 걸리는데, 그냥 한번 시험 접수는 해보지 그랬어.
그러게, 나는 그러니까, 나는....
나는 하루하루만 살았다. 나에게 두 달 후의 시험을 칠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과 내일만 존재했다. 그래서 그 이상의 미래를 못 봤다. 지금 당장 무언가가 나와야만 했고,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했다. 불가능하다. 길게 봐야 하는데 짧게만 봤다. 짧게 짧게 살다 보니 긴 시간이 지나버렸다. 인생은 긴 마라톤인데 나는 단거리 달리기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고 내내 이를 악물고 달렸다. 몇 km를 달릴 쯤에는 물이 있는 부스가 있고, 언제쯤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는지 따위는 머릿속에 없었다. 머릿속에는 당장 눈 앞의 goal밖에 없었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다가 고꾸러졌다. 째깍째깍째깍. 내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건 시곗바늘 소리가 아니었다. 카운트다운이었다.
“나에게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어. 이미 시간은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했거든. 그러니까, 남들이 말하는 ‘좋은 때’를 나는 이미 지났으니까. 보통 남들보다 1,2년은 늦게 해 오는 것이 많았거든, 내가. 인턴 때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주변에 나와 동갑인 친구들은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니까.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이 충분히 걸린다는 사실도 무시하고, 내가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한계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도 무시하고.”
“너 지금 내 앞에서 시간 운운했냐?”(재작년에 대학 들어간 동갑내기)
죄송합니다. 다 각자 때가 있는 거죠.
그런데, 사실. 하루만 하루만 사는 이 습관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때는 나를 살려줬다. 우울증이 정말 심했거나, 지금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많을 때에 어제와 내일과 단절되어서 오늘 하루만 생각하다 보니 삶이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 때도 있나 보다. 계획을 하거나 멀리 봐야 할 때가 있고, 지금 눈 앞의 일만 봐야 할 때가 있다. 아직 그 구분을 잘 못하겠다. 시간이란 참으로 어려운 개념이다. 그래도 이것 하나는 알게 되었다. 카운트다운을 세는 게 아니라 연속하는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고. 이게 내 끝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