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실험 중

by chul

인생이 하나의 실험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해보다가 안되면 저렇게 해보고, 그 결과를 기억하고 후회하거나 반성하거나 배우거나 작전을 변경하거나. 실험복을 입고 조교님의 말씀을 잘 듣던 학부생 때가 생각난다. 다른 점은 인생에서는 조교님도 안전한 실험 복고 보안경도 리포트도 재료도 없고 전부 자신이 해내야만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 실험을 하고 있다. 요 며칠 실패한 실험을 내일부터 다시 할 것이다.


이 실험의 요점은, 취준 기간이 1년이 넘어가는 지금, 작년과는 다르게 해 보자!이다.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1. 몸과 마음 활력 찾기

2. 취업준비 - 공고 찾기, 공부하기, 면접 스터디 구하기

3. 그 외 다른 경험들 쌓기


누군가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하는군’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 어머니께 저 우선순위를 추천받았을 때, 우리가 그럴 처지냐며 당황했다. 엄마는 조용히 나를 끌고 가서 혈압을 쟀다. 평균보다 훨씬 높은 나의 혈압을. 그제야 보였다. 맞지 않게 된 신발과 옷들, 항상 졸린듯한 나의 머리 상태, 아무도 말 걸고 싶지 않아 하는 어두운 분위기, 무력감과 자책감으로 똘똘 뭉쳐져 흐르고 있는 나의 모습을. 그 진물 이 내게 물었다. 계속 이렇게 살아갈 것이냐고.


웃기지 마라

이렇게 살까 보냐. 우울증에서 어떻게 대학 졸업까지 했는데, 어떻게 얻은 삶인데.

그래서 그 삶을 영위해보기로 했다. 그를 위해서는 실험을 해야만 한다.


이름 : 강철경

공동 실험자 : 가능하시다면 이걸 읽는 여러분들(혼자는 외로워)

담당교수: 인생 그 자체

담당 조교(가끔 잊을만할 때쯤 잘 되는지 확인만 할 예정) : 가족 및 친구들- 여러분의 인생에 저란 사람이 들어가서 유감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를 견뎌주시길.

실험 목표 : 취준에만 갇혀있지 말고 인생 전반적인 부분에서 자신감을 얻으며 자존감을 쌓아간다.



첫 번째, 운동을 함과 동시에 밖에 나갈 때는 최대한 깨끗한 옷을 입는다.


운동은 갑자기 불어나버린 내 살을 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하고 말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살이 있다 없다 보기 좋은 모습이다 아니다,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갑자기 살이 불어나서 관절과 여러 내장기관에 문제가 생긴 내 모습을 말하는 것!) 동시에 생각을 좀 안 하려는 발버둥이 기도 하다. 게다가 하고 나면 상큼하고, 상쾌하고, 아무것도 안 한 하루여도 뿌듯하고, 건강해진다! 플랭크 1초도 힘든 내가 지금은 1분은 거뜬히 한다니, 이만한 성취감이 있을까? 나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조금 강도가 있는 편을 택했지만, 그게 아닌 사람들은 스트레칭이라도 하면 좋다.

깨끗한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정하게 밖에서 있겠다는 의미이다. 도서관을 집 앞 편의점을 갈 때와 카페를 갈 때를 조금 다르게 옷을 입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어디든 너무 지저분한 티는 집에서만 입거나 입게 되거든 재킷을 걸쳐서 가리고, 신발을 구겨신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두 번째, 일단 삶을 재건한다.

‘재건’에는 또 가지가 나뉜다. 나의 경우, 최종면접 탈락(아마도)과 인턴 탈락으로 완전히 무너진 패턴이 있다. 지출 패턴과, 기상패턴이다. 인턴 월급이 적지 않았기에,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며 중간에 소비를 돌아보지 않는 습관이 생겨버려서, 용돈을 받는 지금 비상사태가 되었다. 기상도 마찬가지. 늦어도 8시에는 도서관에 도착했는데 이제는 11시에 눈뜬다. 그러나 지출과 기상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계속 신경 써야 한다면, 후자는 계속 신경 쓰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 아직 답은 모르겠다. 지금부터 하겠다는 뻔뻔함만 남아있다.


세 번째, 하고 싶은 거 하고 하기 싫은 거 안 한다.

요즘 책을 다시 읽고 있다. 책을 읽는 습관이 돌아오자, 읽고 싶은 책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며, 여러 기회도 생겼다. 가만 안 둔다 나의 책들 모조리 읽어버리겠다.

그 외에 지금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물론 지출 상황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기에 돈이 안 드는 것부터 시작하겠지.


한강에 혼자 자전거 타고 가기

서촌에 갤러리 보고 브런치, 카페 가기

브런치 매거진 다시 보기

스마트 스토어 알아보기

머리 자르기, 안 해본 스타일로 (done!)


하기 싫은 건, 안 한다기보다는 하기 싫을 때는 안 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럼에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오늘 마감인 이력서라던가. 그건 해야지. 내가 삶을 다시 재건하는 중이긴 하지만, 무작정 놀자고 이러는 게 아니라 남은 시간 잘 살자고 이러는 거니까.


네 번째, 미련은 그냥, 지켜본다.


나는 후회도 반성도 미련도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 최종면접이라던가 인턴이라던가, 거의 얻을 뻔했던 무언가에 대한 미련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다들 그건 바보 같은 거라고, 당장 없애라고 하지만, 그게 가능하면 사람이 아니니까. 미련이 오면 그냥 ‘또 왔소?’하며 최선을 다해서 슬퍼한다. 하지만,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모든 일은 일어났다.



너는 늦는 게 아니야,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호기심도 많아서 그럴 뿐이지.

스승에 날에 오랜만에 연락드린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너무 에너지를 분산시켰나? 이런 나라도 살아가는 방식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걸 알기엔 난 아직 삶 입장에서는 애송이인가. 그래도 어쩌겠어, 할 수 있는 거 하는 거야. 이제 곧 운동을 할 시간이다.


+불합격 연락 안주는 회사의 인사과분들은 월급날도 월급도 랜덤으로 정보없이 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