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아침에 기운이 맑을 때 글을 쓰는 게 좋다는 말을 봤는데, 항상 나는 자기 전에 글을 마무리해서 아쉽다.
최종면접을 보고 나서 어째선지 나쁘지 않은 예감과 함께 허무함이 돌아서 예전만큼 효율을 내지 못했다. 오늘도 도저히 집중이 안 되어서 카페에서 책이라도 읽다가, 채용 홈페이지를 봤다가, 최종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집에 달려와서 바로 배달음식 어플을 설치했다.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왕창 샀다. 술도 샀다. 오늘 운동은 안 하고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어차피 잠을 못 잘 테니 읽던 책을 마무리할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밤을 새우면서 책을 읽으면 위로가 되겠지.
그럴 리가 없다.
다시 어플을 삭제했다. 커피는 밤에 마시면 잠을 못 잘 테니 그냥 냉장고에 두었다. 술은 말할 것도 없다, 자연스럽게 맨 아래칸으로 들어갔다.
정말 지치고 피곤하지만 날 방치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책은 정말 좋은 내용이고 내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지만 나는 원래 밤보다는 새벽에 마시는 커피를 좋아하니까, 내일 아침으로 미루었다. 이대로 씻고 자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다. 세상이 내 불합격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내 세상도 내 불합격으로 많이 무너지게 두진 않겠다.
세상에, 내가 그동안 나를 얼마나 방치했던 거야?”(미국 할리우드 톤)
계좌 잔액을 보고 쉬었던 한숨이 체중계 눈금을 보고 다이내믹하게 들어갔다.
1년 동안 10kg 넘게 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많이 먹지도 않았다. 누워있었다. 서류나 면접이 떨어질 때마다, 다음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눈을 꼭 감거나 혹은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아무거나 지원하면서 에너지를 떨어트리곤 했다. 그렇게 에너지가 떨어지면 당연하게 침대로 들어간다.
아무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는 이제 인생에서는 없나보다.
학생을 벗어난 지 1년이 넘어가는 동안 깨달았다. 생각보다 어떻게든 되는 건 없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아주 조그마한 일이 일어나며, 미친 듯이 한다고 해서 또 결과가 노력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었다.
1년 중 반은 죽상을 쓰면서 여기저기 부딪혔고, 나머지는 될 대로 되라며 입만 벌리고 좋은 소식을 기다렸다.
어느 쪽도, 뭐,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완전히 방치했음을. 학생 때의 ‘정말 어떻게든 되었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해결해주던 용돈, 부족하면 바로 오는 지원, 일단 존재만 하면 수강이 완료되던 강의들. (하지만 졸업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졸업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언젠간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나를 굴러댔음을 인정했다. 입 벌리고 있어 봤자 먹을 것이 입 안으로 들어와서 다시 살이 찔 뿐이었다. 결과가 좋지 않다면 과정이라도 좋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 취업보다 나를 재건하기로 중심을 옮겼다.
아무래도 예전 같은 추진력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리겠다. 그나마 운동을 지속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뿌듯하다. 그래도 나는 나를 놓지 않겠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가장 힘든 절망을 보고 나를 놓았을 때, 그렇게 결심했다. 나는 친구란 가면을 쓰고 내 곁에 있다가 힘들 때 나를 버린 너를 평생 잊지 못하겠지. 비겁한 너에 대한 복수는 나는 나를 놓지 않고, 내 중심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 중심을 잡으면서, 너의 행운을 빌어주겠다. 중심을 잡으라는 충고를 해주는 나의 사람들과 함께.
어쩌면 나는 보란 듯이 좋은 곳에 빠르게 취업을 못 할지도 몰라. 시간이 누구보다 많이 걸릴지도 모르고, 그 길이 어느 방향으로 삐뚤어질지, 상상이 안 된다. 확실한 건 나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친구들과 웃고 우는 내 세상은 견고하다. 그러면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 수 있어, 진정한 자아의 독립으로 서서히 많은 것에서 독립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12시 전에 씻고,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