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삼수(취업 시즌을 3번째 보내고 있다는 의미)째 아닌가? 이제 갓 졸업한 학생들도 취업전선에 뛰어들 텐데."
라는 말씀에 도저히 무어라고 해야 할지,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은 눈치껏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 말 안에는 다양한 의미가 숨어있을 것이다. 첫마디만 보면 그렇군, 이지만 뒤따라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아마 부장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3 시즌이나 지났으니, 조급하지 않나? 얼른 취직해야 하지 않나?’
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말씀 그대로를 들었을 때, ‘그렇죠’ 말고는 할 대답도, 느낀 심정도 없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아 예, 그래서요?’ 정도?
우리 집은 사실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나 의미를 안 두는 편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기를 권장받아왔다.
인턴을 했던 회사의 부장님이 떨어진 직무에 다시 지원하겠냐고(서류부터) 그 의사를 물었을 때, 생각해보겠다, 는 나의 답변에 어머니와 동기 친구의 답은 현저히 달랐다.
어머니는
‘잘했어. 네가 절대 을이 아니야. 이건 계약인 거니까. 너 그 일 별로 안 좋아했잖아. 절대 말려들지도 말고 휘둘리지도 마.’
라고 한 반면에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 왜 그랬어. 당장 전화드려서 사과드리고 지원하겠다고 해. 지금 가릴 처지야?’
그러니까, 부장님께서 내게 ‘삼수째 아닌가?’는 ‘지금 당신이 물불 가릴 처지인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내가 너무나도 반갑게 달려들질 않으니까, 오히려 어떤 직무인지 태평하게 물어봤으니까. 그게 의아해서 나온 말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물불을 가릴 처지가 아닌가?
바보가 아닌 이상 물과 불은 가릴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 ‘사회적 관계’로부터 ‘1년 넘게 취업 못 한 너, 반성하고 부끄러워해!’라는 메시지가 여러 형태로 오고 있다. 내가 너무 태평한가? 나는 면접을 여러 번 봤고, 면접에서 최종 합격을 하지 못했기에 지금은 면접 컨설팅과 스터디에 집중하고 있다.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방향을 잡는 중인데 왜 내가 물불을 가리면 안 되지?
나를 키운 엄마와 아빠가 이런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왜 남들이 나더러 나를 부끄러워하라고 하는 거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면 모르겠는데. 물론 나이가 들수록 사기업에서 공학계열 전공 여자는 불리해진다. 그건 사실이다. 그 사실 때문에 빠르게 취업을 하기 위해서 나름 대책을 강구하고 연구하고 나아가고 있는데 대체 무엇을 더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인턴을 하면서 알았다. 직무와 회사가 굉장히 중요함을. 인턴 또한 급하게 들어간 것이지만, 직무는 나와 전혀 맞지 않았고 회사의 분위기 또한 적응하기 힘들었다. 화장실에서 울기만 하다가 끝내 당연하게도 전환되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나는 그 상황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에, 이번엔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노력하고 모색하고 연구하는 동안 굳이 쭈그러있지 않아도 되는데. 오히려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을까?
나의 멀쩡함이 그들을 당황시키곤 한다. 내가 부족해서 시간이 걸릴 만큼 걸리는 상황에 모두가 숙연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괴롭다. 방황했고, 반성하고 후회하며 막막하다. 미래에 대한 확신도 그렇게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잘 알고 있다. 잘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굳이 내 절망을 옮길 필요는 없으니까 티를 많이 안 낼뿐이다.
단단해졌다, 네 마음 가는 대로 해. 넌 멋진 어른이 될 거야.
어머니의 말을 곱씹으며, 어제도 오늘도 서류를 쓰고 면접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최근 들어 가장 말짱한 정신으로 다시 침대에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