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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y 19. 2021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서평

오늘도 구명보트에 바람을 불어넣느라 지친 당신과 나.

아무도 겪어보지 않았거나,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지만 잘 언급되지 않는 '무언가'를 겪은 사람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뉴얼'이 된다.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정상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삶과의 투쟁을 각오해야만 한다. 남들이 당연하게 얻는 것들을 몇 년씩 늦게 겨우 얻고, 누군가에겐 간단한 자극인데 나에겐 폭발과도 같은 피해가 일상인 그 '삶'으로 돌아감을 결심해야 하니까. 


책 제목 : 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작가 : 오렌지나무 (브런치에 글 연재 중이시다.)

출판사 : 혜다



그렇기에 이 책과 함께 작가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매뉴얼을 따라가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책은 먼저 작가님의 이야기,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에게 당부하거나 해 주고 싶은 말들, 우울증 탈출을 위한 매뉴얼들과 가족들을 위한 매뉴얼, 자살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한때 우울증을 심하게 겪고, 지금은 여러 상황으로 인한 무기력증을 겪고 있는 내가 타이밍 좋게 읽은 책이다. 


죽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 그때의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웠나요? 얼마나 슬프고 서러웠나요? 저도 그런 날들을 기억해요. 


사실은 그 누구보다 살고 싶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쌓이고 뭉쳐서 아예 다른 증상으로 나오고 있다. 작가님의 솔직한 이야기는 차도에 뛰어들려고 타이밍을 쟀던 재작년의 나를 마주 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00을 못 하면 죽는다, 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잘 안 되니까 그냥 다 포기하려고 했다. 잘 안되었던 모든 것들이 서러웠다. 그런 날들을 기억하게 해 준 책이다.


자신을 몰아세운다고 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요. 그러다 우울증이 오고 병세가 심해지면 목표에서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에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필요한 순간에 목표를 수정할 줄 아는 것, 자신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의 70% 정도만 이루겠다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에요.

우울증이 심해질수록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작아지지만, 해야 할 일은 더욱 많아진다. 특히 한국처럼 1,2년 속도에 목숨을 거는 분위기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울증 때문에 주저했던 시간들마저 빠르게 보상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늦춰진 만큼 재건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 이를 간과하면 그저 목표는 멀어지고 몸과 마음이 망가진 체 몰아세우기만 할 뿐이다. 


습관들을 하나씩 만들다 보면 일상이 조금씩 재건돼요. 그러다 보면 자기 효능감이 높아져 우울감을 적게 느끼게 되고, 우울증의 가장 무서운 증상 중 하나인 무기력에도 저항할 수 있게 되죠. 뭔가를 규칙적으로 하는 습관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걸 하는 동안에는 무기력하고 싶어도 무기력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나 또한 '일상이 날 살렸다'라고 자주 말할 만큼, 무기력하고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습관이나 패턴은 중요하다. 일단 습관이 만들어지면, 그 습관을 한 후에 성취감이 있을뿐더러, '이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지?'같은 생각이 안 들기 때문이다. 생각에서 멀어져야 하는 만큼, 습관이 주는 힘은 굉장하다. 특히 나처럼 아무 소속이 없는 사람들은 직장인이나 학생과는 다르게 스스로 습관을 만들어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럴 때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무작정 적어서 정리해보고, 눈에 띄는 것 먼저 하나씩 해 보면 약간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우울증을 겪은 사람에게도 좋지만,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더욱 추천하고 싶다. 우울증인 사람에게 하면 안 되는 말, 우울증 환자가 있는 가족을 위한 매뉴얼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와 주변 인들이 멀어지는 과정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쪽이 절대적으로 약해져 있는 상황에서는, 아직 건강한 쪽이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해줘야만 한다. 


우울증을 앓는 이도, 그런 이를 보살피는 사람도, 우울증에서 완치되기 위해서는 인생이 끝났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버려야 해요.


우리가 인생이 끝났다고 좌절하는 시기는 아마, '남들이 다 이룬 것을 그들이 이룬 시간 내에 못 이룬'나의 모습을 보았을 때이다. 나 또한 1,2년에 전전긍긍해하는 사람이고 '지금 늦은 거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안 들어오는 만큼, 성취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그렇게 계속 자신을 보살펴야만 한다. 끝이란 없다. 



엄마는 심리상담을 다니고,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내가 이해되지 않아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공부를 했다. 그런 엄마에게 이 책이 그때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모든 타이밍이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다만, 이 책이 있었으면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자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내가 가진 아픔이 어떤 유형인지를 엄마가 더 빨리 알 수 있었을 텐데. 가족들을 위한 매뉴얼을 보면서, 새삼 나도 참 고생하면서 겨우 살아왔구나, 하며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책을 덮으며, 

모두 다루지는 못 했지만, 이 책에는 가족과 관련된 매뉴얼, 습관과 취미를 조금씩 만들어가는 과정,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다. 

우울증의 양상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고 닮은 심정의 변화를 겪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된다. 나는 어떻게 살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포기해야 할 것과 포기해서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 진심으로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나'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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