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새들을 날려 보낸 모든 이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운이든 때든 실력이든 무언가가 안 맞춰져서 나뒹구는 백수는 이런 얘기를 듣는다. ‘세상이 너를 모르네!’,’ 회사 가면 일 잘할 사람인데 아직 때가 아닌 거야!’,’ 넌 숨겨진 인재야!’
그럴 때마다 ‘나 숨겨진 인재 같은 거 아닌데. 진짜 별 거 없는데. 그냥 평범한 일자리 구하는 사람인데.’라며 움츠러든다.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고수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니. 알 수 없는 의무감에 어깨가 무겁다. 나도 취업하게 되면 신입이고 막내고 모르는 것 투성이일 텐데.
주변 사람들과 다르거나 늦은 사람이 사실 ‘절대적으로 멋진 존재’ 면 정말 좋겠다. 남들보다 입시나 취업 혹은 그 외의 일들이 늦거나 다른 길을 선택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진심으로 지켜야 한다. 스스로 ‘난 백조야 아직 시기가 안 온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베스트다. 그 믿음이 눈 앞의 안 보이는 길을 더듬어가는 힘이 될 테니. 백조라고 믿거나 백조라고 보듬어주는 건 좋다. 하지만, 백조만이 해피엔딩인 걸까? 미운 오리가 그냥 오리 중 조금 다르게 생긴 오리였다면? 미운 오리가 찾아간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오리를 문전박대하거나 따돌리지 않았더라면? 미운 오리가 백조가 아니라 그 외의 새였다면?
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반수생(대학이 있지만 2학기 때부터 수능 공부를 시작하는 재수생)이었다. 원하는 만큼의 성적은 얻지 못해서 복학을 했다. 이미 친해져 버린 동기들, 애매한 한 학번 아래의 후배들,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들어가지 않으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는 여러 작은 동아리들.
백조이고 싶었다. 나는 내가 백조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다른 시작을 해버렸으니 끝은 남들보다 창대해야 한다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점도 엄청 좋게 받아서 좋은 곳에 취직하리라! 는 무슨 셋다 실패했다. 친구도 많이 못 사귀었고, 면접 때마다 ‘우와 학점이 왜 이렇게 낮아요?(진짜 감탄함)’이란 소리를 듣고, 인턴 전환 실패하고 다시 취업준비생이다. 나는 모든 새들을 평등하게 생각하고 사랑하기에 ‘백조가 아니라 00 새면 어떻게 해!’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뭐, 그래도 기왕이면 뱁새이고 싶다. 귀여우니까. 어찌 되었든 상대적으로 우러러보는 사람들이 많은 ‘백조’는 나는 아니었다. 음, 그래서? 백조가 아닌 미운 오리새 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다. 운동하고, 산책하고, 공부하고, 준비하고. 그러니까 이런 영양가 없는 글이나 쓰고 있다. 오죽하면 나보다 어리지만 취업을 성공한 사람들에게 ‘지금 물불 가릴 처지야?’라는 말을 듣고 하는데, 잘 생각해보자. 백조라고 물이 있는데 불로 가겠는가? 아니 오리든 뭐든 새라는 존재는 물 위에 동동 떠있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누가 불로 뛰어들겠냐고.
내 사람들은 내가 힘든 상황에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내가 ‘백조’라는 코인이나 주식을 갖고 있을까? 그럴 리가, 그냥 내 옆에 있다. 나 또한 누군가가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멋진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옆에 있지 않는다.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진 않겠지만, 조금 걱정이 된다. 열정과 희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얘기처럼 보일까 봐. 자신감을 갖고 꿈을 갖고 살아가지 말자! 도 절대 아니다. 우리가 백조가 아니더라도 살아가야 하고, 백조만이 해피엔딩이라고 말하는 이 분위기가 싫다는 이야기다. 물론 백조 부럽다. 백조이고 싶다. 하지만 백조가 아니어도 해피할 수 있다. (엔딩이란 단어를 뺀 이유는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엔딩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백조가 아닐 것이며 심지어 지금 미운 오리다. 그런데 오늘 친구가 사준 새로운 샌들이 발에 맞았고, 운동을 해서 몸놀림이 가벼워졌으며 어제까지 비 오던 하루는 맑아졌고 버즈로 흘러나오는 노래는 아주 신났으며 단골 카페에서는 사장님이 졸지 말라며 커피를 더 주셨다. 행복한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라 믿는다. 미운 오리도 길 걷다가 핀 꽃을 보며 행복하지 않았을까? ‘미운’이란 단어도 마음에 걸려, 사실 다수와 다르게 생겼다고 ‘밉다’고 해버린 거 아냐?
그래, 백조면 좋겠다. 하지만 내 엔딩이 지금은 백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학명이 어떤 새이 든 간에 알고 보니 백조가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미움을 받아야 한다니. 백조 아닌 것도 아쉬워 죽겠는 판에. 언젠가 백조가 될 것이기에 지금의 고통스러운 시간이 정당화되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과정도 너무 괴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조가 된 이후부터가 우리 삶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고, 그 이후도 전부 삶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