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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n 11. 2021

끊겨버린 관계를 생각한다.

관계란 결국 부유하는 걸까

끊겨버린 관계를 생각한다.

A는 제일 오래 밀도 있게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였다. 채용 취소 전만 해도 축하하다며 시계를 사주겠다고 메시지를 보내던 그는, 갑자기 내가 채용 취소가 되어서 힘들다고 하자 한 달 동안 모든 연락을 끊었다.

나에게 그 일은 생존과 직결되며(지나고 보니 그냥 해프닝이었지만), 나 자신과 앞으로 미래에 대한 불신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게 만들었다. 어 그러니까, 큰일이었다. 내 큰일, 그것도 안 좋은 일이 그에겐 귀찮은 정도였던 걸까? 한 달이나 연락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생각보다 A는 내 일상을 너무나도 많이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가수부터 여행지, 주고받았던 편지까지, 그가 너무 많이 심어져 있었다. 난 다시 그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잘 지내냐고, 나도 용기 내서, 즐거운 일 있으면 네가 먼저 생각나서 연락한다고. 혹시 그때는 왜 그랬냐고. 친한 친구의 불행을 그저 귀찮다고 무시할 사람은 아닐 텐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미안해.

그에게 온 카톡이었고 그 이후로는 그 어떤 연락을 내쪽에서 취해도 그는 읽지도, 받지도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아직도 당황스럽다. 첫 번째는 내 우울이 심했을 때 몇 년간 편지를 보내며 나를 겨우겨우 살려줬던, A에게 내 불행이 단순히 위로하기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 두 번째는 그가 내 일상에서 완전히 없어졌지만 서로 별 탈 없이 잘 산다는 것. (친구와 연인의 차이가 이런 걸까.) 하지만 그 친구와 함께 즐겁게 얘기했던 여행사진, 가수 사진을 보며 ‘야, 이거 봤냐?’하고 옆을 보면 아무도 없다. 그 친구에게 나란 친구는 뭐였을까, 불행을 귀찮아하며 연락을 끊어버리는 관계는 대체 뭘까?


카카오톡 메시지 창을 보면 예전에 자연스럽게 맨 앞을 채우던 관계들은 전부 맨 뒤로 밀렸거나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어떻게 이러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건 인정하겠지만,  A와 같이 아프게 뒤통수를 맞듯이 멀어진 관계는 내게 너무나도 많은 상처와 의문을 남긴다.


A를 생각한다. 그러면 세상 모든 관계가 다 허무하며 사람은 언제든지 소중한 사람을 자기 자신을 위해 없는 사람 취급할 수가 있음을 되새기게 된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나를 살렸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갑자기 내게 칼을 찌르고 도망갈 수도 있다. 사람이란 뭐고 관계란 무엇일지, 세상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이해도 납득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이런 일이 괴담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또 A를 만나고 어디선가 나는 A가 되어있겠지. 누군가에게 A는 천사일 것이며 누군가에게 A는 악마일 것이다. 과거의 내게 그가 구세주이자 베스트 프렌드였고 지금의 내게 그가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것처럼. 우리가 친구였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다. 지금은 원수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렸으니까. 왜 그랬지, 나한테 왜 그랬지,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지. A 말고는 아무도 답해줄 수 없지만 A는 입을 닫고 도망갔다. 나는 평생 너를 의문 속에 파묻고 살아갈 것이다. 너를 생각할 때마다 세상도 살아갈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너를 생각할 때마다 부유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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