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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n 23. 2021

곳곳의 일상들이 내게 성큼 다가와서,

궁상떠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야, 나와. 자전거 타러 가자. 흐려서 자전거 타기 좋다.


이 친구는 저번 주에는 맑아서 자전거 타기 좋다며 나를 끌고 한강을 2시간 동안 달리게 만든 주범이다. 무기력하고 그 무엇에도 흥미가 없을 수밖에 없는 나의 상황과 심정을 듣고는


리프레시가 필요하겠는걸.


이라고 중얼거렸던 친구다. 그때는 몰랐다. 직접 내 머리채를 잡고 리프레시를 시킬 줄은. 한강은 참으로 공평해서 (그냥 엄청 커서 그런지도 모른다) 우리의 중간지점에 있다.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다가도 그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를 보면 룸메들의 배웅을 받으며 따릉이(서울시 대여 자전거)가 많이 남은 곳으로 뛰어가야만 한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달려 나가고 싶은 날이 오고, 잘 지낼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 입는 옷처럼 갖고 있을 뿐이다.


사람은 언제 곤두박질 칠 지 모른다. 그러니까 살 만할 때, 미리미리 일상이라는 이름의 구호물품을 숨겨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없이 떨어질 때, 그 모든 것들이 낙하를 조금씩 방해해준다. 앞에서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며 나를 안내하는 모자를 쓴 그 친구를 보며, 관계를 평소에 내가 잘 맺었구나, 그래서 저 친구가 지금 내 낙하를 조금씩 방해하고 있구나, 하고 문득 생각이 난다. 물론 힘들어서 금방 그 생각은 지워졌다.


궁상만은 다른 사람 앞에서 떨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사람은 궁상맞아지는 때가 있나 보다. 내가 그게 지금 같다. 좀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궁상을 떨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쓰러진 내게 친구가 다가왔다. 친구의 발목을 잡고 외쳤다.


술 마시고 싶어. 생맥주. 소맥. 하이볼.


친구는 조용히 나를 스타벅스로 데려가서 초콜릿 음료를 입에 물려줬다. 투정을 부리자 티라미수도 시켜줬다. 원망의 눈길로 쳐다보자 하는 말이 “초라한 시간 충분히 지나다 보면 괜찮아져. 그동안은 뭐라도 해. 생산적이지 않아도 좋으니까.” 생산적이지 않아도 삶은 살아져,


 친구와는 마주 보고 있었지만, 어깨를 빌린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잘될 거라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게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미래에 희망이 없으면 뭘 기대하고 살란 말입니까. 조금이라도 더 잘될 수 있다는 기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대신 엄마는 잘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게. 궁상을 떨고, 자격증 시험 접수를 미루다가 놓치고, 약대신 술을 마시는 내게 , 그럼에도 잘하고 있는 거라고. 그냥 아직 때가 안 왔을 뿐이고 지금은 필요한 시간만큼 지내고 있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위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는 듯한 그 말에, 감탄하며 “엄마는 뭘 믿고 그런 말을 해.”라고 물었다.

“나는 너를 아니까.”

지금은 시간을 지내고 있을 뿐이야.

평소에 홈트레이닝으로 단련한 체력이 나를 달리게 하고, 항상 같은 시간에 침대에 누웠던 시간들이 쌓여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때 잠들게 하고. 귀찮지만 보고 싶기도 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들어주고 울고 웃었던 관계들이 나를 문 밖에 나오게 하고. 내가 살아있는지 커튼을 치고 얼굴을 살피기도 하고. 빨빨거리며 찾아다녔던 서울 곳곳의 카페와 전시회, 골목들이 지금 내가 집에서 도망쳐서 힐링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쌓아놓은 편지들은 다시 내가 펜을 들게 해 준다.


자전거를 옆에 두고 다리 밑에서 날 기다린 친구에게 말했다. 뭘 믿고 날 기다려, 내가 안 나오면 어쩌려고. 내가 갑자기 도망치면 어쩌려고. 퉁명스럽게 친구가 말한다.

“네가?”

그 한 마디가 오늘도 나를 자전거가 남은 곳으로 달려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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