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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Oct 01. 2021

비열함을 회피형이라고 포장하는 너에게.

언젠가 이 글이 네게 닿을때, 내 세상에 너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 사람이 ‘회피형’ 같은 모습을 보이면, 슬슬 피하곤 한다. 특히 스스로 ‘저는 회피형이에요’라고 칭하는 사람일수록 최대한 자연스럽게 문워크를 연습하는 척하면서 멀어진다. 내가 유일하게 단짝이라 칭했던 두 명은 스스로를 회피형이라고 칭했다. 문제를 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난데없이 뺨 맞고 멍하니 남는 사람이 존재했다.

그 사람을 왜?라는 지옥에 남겨놓고, 밀어놓고 본인은 모든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그런다 “회피”했다고. 회피라는 단어를 오염시키지 말자, 당신은 회피한 게 아니다. 가해했고 그냥 사과하지 않고 그 사람을 밀어 넣은 것이다.


A가 일주일 전에 프로필 뮤직을 바꾸었다. 나는 아직 그가 밀어 넣은 지옥에 남아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A는 내가 우울증이 심했을 때 항상 멀리서 편지를 보내주며 나를 살려놓았다. 예쁜 말을 해줬고, 나더러 고맙다고 했고, 노래 가사를 적은 엽서를 보내주었다. A는 일본에 취직을 하였고 나는 졸업 이후 취업준비생이 되었다. 인턴 정규직 전환 실패 후, 다른 부서에 취직이 되었고, A는 기뻐하며 내게 시계를 사주겠노라 했다. 하지만 채용은 취소되었고, 나의 채용 취소 소식을 들은 A는


아무 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 회사가 나의 채용으로 뒤집기 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가족들을 살폈어야 했고, 동기들과 선배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A는 피날레였다. 아주 확실하게 난 죽이는 피날레였다. 나에게 그 어떤 이유도 핑계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는 그렇게 끊겼다.

몇 주 후,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야기로 카톡을 보내보았다. 아이패드를 샀다는 내용이었고 A는 아이패드가 무슨 색이냐고 물었다.


A야, 우리 그때 이야기를 하지 않을래? 우리가 그간 그렇게 지냈는데, 내가 가장 힘들 때 네가 그저 귀찮다는 이유로 나를 모른 척 하진 않았을 것 같아. 그냥,  그때 왜 그랬는지, 네 상황을 얘기해줄 수 있을까? 알다시피 채용 취소나 전환 실패가 작은 일이 아니잖아. 나한테 굉장히 생활을 위협하는 일었는데, 왜 그랬는지, 그 이후로 왜 아무 말도 안 했는지 괜찮다면 얘기해줘.


A는

ㅠㅠ미안해ㅜㅜ

하고는 물구나무를 서는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답을 안 했다.

6개월이 지났다.

우리가 서로에게 카톡을 맨날 주고받은지도 6년이 넘었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친구의 좌절과 절망, 그 모든 것이 A에겐 장난이었던 것이다. A는 그렇게 나를 농락한 후 나의 모든 연락을 무시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나와 관련된 친구들의 연락도 무시한 모양이다.

그런 A가 프로필 뮤직을 바꾸었다. 카카오톡이란 메신저를 하고 있었다.

A는 자기가 회피형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회피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주 적극적이고 효과가 좋은 가해 방법을 남용하는 사람이다.

나한테 일어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다 파악하지 못했다. 가장 친한 친구의 절망을 듣고 무시하고 비웃고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지만 프로필은 바꾸는 쓰레기의 마음을 내가 알 필요가 뭔가. 다만, 난 그의 불행을 바란다. 진심으로 바란다. 남한테 미련도 후회도 잘 안 두는 내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 자체가 그의 불행임을.

최선을 다해서 나는 잘 살아갈 것이고, 그때 내 마음속에도 머릿속에도 A가 없는, 그런 최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모든 것을 피하고 농락해서 A에게 남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지켜볼 생각은 없다. 너의 곁에 있기 싫다.

A의 프로필 사진은 나와 관련된 것, 그리고 내가 찍어준 사진들이다. 유지하고 있는 생각도 가늠이 안 된다. 부디 네가 가는 길 모두 외롭길, 그제야 네가 나한테 했던 짓이 생각이 나면, 그때 내 세상에 너는 흔적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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