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세상-2
앞에서 한 '나와 세상'의 글을 이어서 쓰고자 한다.
요즘 계속 조금씩 늘어졌더니 이러다가 아예 끝맺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역시 예전에 애썼던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서 지치는 사람이구나
얘기하다보니 역시 길어진다......3문장 쓸 것을 9문장으로 늘려버리는 나의 문장력에 치얼스....
-"그 관심이 철경씨가 관심있었던 관심이 아닐때가 많을 뿐이지."
나는 세상에 대한 회의감에 가득 차 있던 상태였다.
내 이야기를 하는동안, 상처 받은 날들은 그대로 남아있음이 더욱 실감이 났다. 내가 행복한 순간이 있다고 해서 내가 받은 상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살아가는 나날에 상처받지 않을 날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상처를 받을 순간을 보고 피해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 짜증나는 건 그 상처가 나만의 잘못이 아니거나 혹은 내 잘못은 없는데 운이 없어서 걸렸던 사실!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나에게 너무 냉랭했다.
그렇다고 딱히 시련만 준 건 아닌데, 그냥 나에게 관심 자체가 없었다. 최대한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은 좋지 않았고(나는 99점 맞았다고 100점 아니라고 우는 사람이 아니다. 좋지 않았다면 최악인 것이다.), 시간을 내서 간 봉사활동에서는 아무도 나랑 친해질 생각이 없다는 것만 잘 알게 되었다.
그런 세상이 저에게 관심이 있다고요?
다시 말하지만, 내 상담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내가 놓쳐버린 나의 기억들과 나 자신을 발굴하는 작업이었다.(또 무언가가 떠오르려고 한다.)
명수옹의 짤이 많은건 의도한게 아니다. 팬입니다 명수옹.
신기하게도 난 오래된 인연들에게 반가운 연락을 자주 받는다.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 선생님, 나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말을 거는 중학교 동창, 연락 안 한지 오래인 사촌동생 등등. 더 신기한건 누군가가 나를 떠나면 꼭 다른 누군가가 나를 다시 찾았다. 그걸 보면서 세상에는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친한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유지되는 '관계 보존량의 법칙'같은게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나는 나를 바라봐주는 주위사람들이 아니라, 나에게 관심도 없는 낯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집착해왔다. 가장 소중한건 내 주위 사람들인데.
떠날 때가 되어야만 그 소중함이 갑자기 다가온다. 난 항상 그렇게 나의 가진 것들을 사랑할 타이밍을 놓쳤다.
아 그리고 자랑 하나 해도 되겠는가?
이렇게 유레카를 외치듯 깨달은 것 같지만, 나는 예전부터 세상이 나에게 가끔 먼저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한 적이 꽤 있었다. 이건 내 자랑거리이다.
세상은 나의 현재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혹은 그런 상황에 있는 나를 위로해주는 문구를 항상 기막힌 타이밍에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건 다양한 형태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그냥 듣다가 갑자기 가사의 뜻이 궁금해져서 찾아본 노래의 가사로, 책 표지 헷갈려서 잘 못 빌린 책의 한 문구로, 누군가의 상태 메세지로, 친구가 보내준 편지로.....
그럴 때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존재함이 실감이 난다.
그게 신이라고 할 수도, 우주의 원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세상에 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건 나를 꽤나 다정한 눈빛으로 지켜봐주고 있다.
세상이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
하나하나 찾아보면 나에게 다가온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내가 원한 것이 아니거나, 내가 그 순간으로는 성이 차지 않거나.
그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아직 제대로 마음을 못 정한 것이 있다.
그러면 나는 세상이 주는 순간마다, 내가 원한 순간이 아니라도 감사히하면서 만족해야 하는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순간을 세상에게서 받을 수 있게 어떤 노력을 미친듯이 해야 하는가?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저 두 선택지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그리고 저 두 선택지를 잘 조화시켜서 쓰는 방법도 분명 있겠지.
나는 아직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기에는 그 그릇이 작은 것 같다. 그렇다고 체념하면서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일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살아가면서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투비 컨티뉴.
-세상이 바라는 것이 아닌, 내가 바라는 것에 좀 더 성실해질 것.
앞 글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남들이 바라는 조건에 맞춰서 잘 살려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다가 지쳐버렸다. 알바는 안해? 해서 알바해보고. 친구 안 사귀어? 해서 동아리도 여러개 들어가보고. 어디 안 놀러가? 해서 혼자 어딘가 놀러가보고. 결론적으로는 나의 경험의 폭을 넓혀줬지만 나는 거기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힘들었다.그리고 나와 맞지 않은 선택때문에 괴로워했다.
마치 누군가가. 아 이 정도면 힘들어도 돼! 라고 도장을 찍어줘야만 마음껏 쉬고 힘들어 할 수 잇는 것처럼.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가진게 없다.
오히려 많은 것이 필요하다. 대학교 등록금, 월세, 용돈, 집중력, 학점, 주변에 외롭지 않게 해줄 누군가, 건강한 몸, 균형잡힌 식사.......
돈을 벌지 않는 대학생이 세상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나는 세상에게,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도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살아오면서 알게모르게 받아온 부담들이 원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성격이 빚지고는 못 살아서 그럴 수도 있다. 둘 다 일수도 있고 그 외에 더 있을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할수가 없어서 줘야 한다는 불안감과 부담감에, 내 머리를 써서 뭐라도 만들어내서 세상에 기여를 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가진 것도 계속 내놓게 되고 머리를 쉴새없이 돌아갔다.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요구해야 하는 것들 뿐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받으면 그것만큼 혹은 그것보다 더 많이 돌려줄것이다.
지금은 내가 받을 때인 것이다. 염치없지만 좀 받겠다. 남들은 어느정도 받는 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이 정도는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내가 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그 사람에게 못 줘서 안타까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냥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니! 그러니까 뭐라도 줘야해!
이러다보니 주는 나도, 받는 누군가도 괴로워하는 결론이 나오더라.
상담을 할때, 내 친구의 이야기도 하였다.
이 친구는 흔히 말하는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부류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자신의 이야기는 남의 배려없이,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건너뛰거나 화제를 바꿔버리거나 해서 끝까지, 많이 한다. 특히 자신의 힘든 이야기들!
이 친구의 이야기를 하자, 선생님이 나와 그 친구가 완전히 정 반대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심 그 친구와 나는 닮아있다고 생각해왔던터라, 굉장히 의외의 말이었다.
즉, 나는 필요한 것 까지 전혀 요구하지 않지만 그 친구는 자신이 갖고싶은거, 필요한 것을 마음껏(물론 권할만한 방법은 아니지만) 세상에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사람들은 왠만하면 자신이 좋은사람이고 싶어한다. 그 친구가 내미는 손이 비록 거추장스럽고 귀찮고 한두번 그런것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잡아준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좋은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아니다. 별 탈 없이 아주 자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조금 틱틱거리긴 하지만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게 요구한다는 것...여전히 나와 세상을 둘러싼 이야기는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나도 적으면서 어렵고, 안 좋은 일이 계속 생기는데 세상이 어떻게 내 것이에요!하도 울부짖게 된다. 세상에게 요구하고, 그게 이뤄지는 것은 간절함이라고, 어디서나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그 간절한 상태가 지속되면 지치게 되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아직은 그렇게까지 간절해본적이 없던 걸까?
잘 모르겠다.
그냥 내심 내가 운이 꽤 좋은 편이라는 것은 알고있었다. 그냥 사소하게 식당 웨이팅운이나 시험기간 도서관에 하나 남은 자리같은 운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