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말 안 해줬냐?

살려달라며 뛰어간 곳은 병원과 상담소였다.

by chul


왜 그렇게 사는 거야?
왜 그렇게 사냐니 그림 그리는 지금도 화나네.

학점도 못 챙기고, 친화력도 없어서 친구도 안 생긴 내게 지나가듯 동기 한 명이 해 준 말이다. 지금이야 굉장히 무례한 말이지만, 그 말만큼 그때 그 상황을 제대로 짚어줄 표현이 있었을까.

나의 죄목은 ‘남들처럼 살지 않은 죄’였다. 그렇다고 나만의 길을 가겠다며 개척하던 프론티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굳이 더 정확하게 해 보자면 ‘남들처럼 일이 흘러가지 않은 죄’라고 할 수 있겠다.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몰아세우는 주변에 익숙했기 때문에, 내가 흔하지 않은 경우에 처할 때마다 겁에 질려 떨었다. 남들 50점은 넘는 100점 만점에 2점도 받고, 4학년 때 전공 성적이 F가 나올 뻔해서 졸업을 못 할 위기에서 그 교수님이 내 졸업 프로젝트 담당 교수님이라 C0라는 도움닫기로 겨우 졸업했다. 다들 이렇게 안 사는 것 같아서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초콜릿 크레파스 아시나요? 알면 이제 나이인증하는 겁니다.

그중, 가장 사회적으로도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가 되어버린 일이 생겼다. 불면증을 시작으로, 스스로 ‘우울증’이란 의심이 생겨나며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심리상담을 듣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우울증이나 심리상담이 굉장히 안 좋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인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밥을 먹다가 소리를 질렀고, 5일 넘게 잠을 자지 못해서 코피를 흘렸다. 보일러 소리가 울리는 방 안에서 자살방지 번호에 전화를 걸고 있는 나 자신이 댕그러니 있었다. 옆에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커다란 바퀴벌레가 뒤집어져있었고 그 길로 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바퀴벌레도 잡았다.

약을 복용하고, 심리상담을 알아보면서 나는 끝없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내 삶을 납득시켜야만 했다. 도대체 네가 뭘 겪었기에, 그렇게 큰 일도 없으면서 왜 정신이 해이해졌냐는 이야기부터 지금 이렇게 무너지면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더 큰 일을 어떻게 해내고 살아가려고 하냐는 질책까지, 남들이 내게 한 만큼 나도 나에게 해 주었다.

아이고 다 하나씩 그려야합니다..

하지만, 정말, 미안하게도,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언제든 죽음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나도 살아도 된다고 말해준다면, 그러면 살기 위한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엉망인 삶도 그 주체가 아직 목 위에 머리가 달려있다면 살려달라고 빌었다. 눈치 없이 살아남아서 미안한데, 이렇게 살아감을 허락해달라고.


그럼 이제 문제가 남았다. 누구에게 허락받을 것인가?

얼굴도 기억 안나는 동기? 졸업한 지 2년 된 대학의 교수님? 부모님? 친구? 아니면 나?

내가 허락한다!라는 멋지고 폼나는 결론이면 좋겠지만, 나는 그런 결론은 내지 못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다. 굳이 허락받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살아도 안 죽으니까.

디지털로 크레파스 그림을 그리니 색다르네요


사람들이 말하는 당연히 얻어야 하는 그 많은 것들은, 곱씹어보면 역으로 얻기 힘든 것들이었다. 학점이 좋으면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는데 친구까지 많아야 한다니. 잘 한 사람들을 칭찬해줘야 할 시간에 못 한 사람들을 섞어 골라낸다니. 못하는 사람 대표 1로 매우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누구나 이 정도는 하는 거야라며 해내는 사람들이 대단한 거다. 못 한 나는 그냥 못한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살아도 된다. 물론 괜찮지 않다. 당연히 잘하고 싶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못하는 사람이 받는 시선과, 설 자리는 반비례하니까. 무엇이든지 보통은 해야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릴 순 있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이야, 거참

이런 삶도 살아지더라고요?

크레파스로 그렸는데 바닥엔 물감 흔적이 있군요

허락이 아니라 증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사실을 허락받는 대신 나는 증거가 되기로 했다. 심리상담을 3번 넘게 받아서 아마 성격파탄자라던가 사람들과 못 어울린다는 선입견을 주는 존재지만, 나는 어찌 외롭지 않게 잘 산다. 가끔 친구를 만나고, 프로필 사진을 놀러 간 사진으로 바꾸고, 심심하면 전화를 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당연히 남에게 큰 물리적, 정신적, 재정적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은 내에서는 얼마든지 어떻게 살아도 된다는 증명을 하고 있다.


왜냐면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아직 20대 중반인 나의 이야기로 나이가 더 덜어서 책임이라는 걸 져야 되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그때는 그 나이가 되어서 한번 내가 알아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때 또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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