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라는 바다에 오늘도 유리병 편지를 띄운다.
어쩌다 글을 쓰게 됐더라?
요즘 재미있게도 여기저기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계기들이 있었다. 브런치를 3년째, 자기소개서는 1년반째 쓰고 있기때문에 언제부터인가 글은 그냥 하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글로 무엇을 말할지, 어떻게 전개할지, 언제 쓸 지만 고민하다가 ‘왜’라는 질문을 받으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공도, 지금까지의 삶도 글쓰기와 거리가 멀었는데 어쩌다가 글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었을까? 왜 나는 오늘도 브런치라는 이 거대한 바다에 누가 볼 지 안 볼지 모르는 편지를 유리병에 넣어서 던지는걸까?
발단은 토해서 게워내기 위함이었다.
혼자 멀뚱히 서울에 와서, 아는 곳이 없어서 좁은 고시원 방에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창문을 보며 보일러가 뚱땅뚱땅 돌아가는 소리를 벗삼아 잠이 들었다. 외로웠고, 답답했고, 그 이후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태풍의 눈에서 고요하게 있었다. 당연히 주변은 엉망이 되었다.
이러다 죽겠다, 뭐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었다. 브런치또한 원래는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전개된 예정이었으나 익숙했던 그림은 점점 전개가 힘들어졌다. 아예 새로운 언어로 리프레시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고, 글과 그림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나의 브런치가 완성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의아함이었다.
주변에서 항상 왜 그렇게 사냐, 다들 잘 하는데 왜 혼자 힘들다고 유난이냐, 이런 말을 곧잘 들어왔기때문에 더욱 글을 발행할 때, 읽힌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잘하면 위로, 못 하면 비난, 대부분의 무관심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하게 돌아온 것은 많은 공감이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자신의 이야기인것만 같다는 말이 들렸다. 그 공감의 크기가 굉장히 컸기 때문에 나는 일단 계속 썼다. 유난하게 힘들어하는 사람의 글을. 다들 한번씩 겪거나 지나가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은 그런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지금은 증명이다.
언제부터인가 브런치는 더욱 커졌고 날고 기는 사람들도 몇번의 작가 승인을 시도한 끝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애들은 참 힘들겠어, 나때는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 되었던 때거든.’하고 말하는 연장자들의 마음을 약간 이해하게 되었달까. 그러다보니 동시에 브런치의 모든 글은 퀄리티가 높아졌다. 퀄리티 높은 사람들이 더 많이 들어왔으니 당연했다. 그들은 아직 자리잡지 못한 내가 보기에 다들 빠르게 자리를 잡았으며, 빛이 났고, 자신만의 멋진 이야기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면서 몰입하는 상태지만, 한때 자괴감에 빠져있던 취준생은, 글을 읽다가도 ‘회사’나 ‘퇴사’같은 말이 나오면 뒤로가기를 눌렀다. 같은 플랫폼에서 활동한다는 사실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다들 그렇게 잘 사는 걸까? 나처럼 사는 사람도 있는데. 넘어지고 운이 안 좋고 떨어지고 그럼에도 다음날 아침을 덤덤하게 맞이하면서 삶에 최선을 다 하는건 나도 그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다시 글을 썼다. 고꾸라진 삶도 삶이란걸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잘 되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물론 잘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어떻게든 살아가면서 커피 한 잔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목표를 이루기 전이지만 그 외의 일에도 충분히 행복과 활력을 느끼며 살아가도 된다고 증명하고 싶었다. 알량한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잘난 사람만 살아가냐? 못난 사람들이 있으니까 여러분이 상대적으로 잘나보이는거야. 이런 없어보이는 각오를 가지고 글을 쓴다.
적고보니 타인을 위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 그도 그럴것이, 아직 그렇게 나눌만한 좋은 경험과 인사이트가 내겐 없다. 졸업 전에 취직을 했다던가, 뛰어나게 공부를 잘 했다던가, 그런게 없으니까. 잘 안 될까봐, 실패하면 그 다음 생은 없을까봐 전전긍긍해하는 사람들에게 '지겹게 내일이 오니까 걱정마라'라고 내 글과 내 삶으로 증명할 뿐이다. 누군가가 언젠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힘든 일을 겪고, 다시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거라고 확신할 때, 나의 글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정말 잊을만할때 갑자기 그 사람의 뭍에 파도에 의해 나타난 유리병편지이길 바란다. 그 안에 들어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얼흥얼투덜투덜하면서 잘 살아가던 나의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