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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Nov 27. 2021

생각에 갇힐 때, 나는 대화한다.

프레임 밖에 있는 누군가를 마주한다.

요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다. 정말 누가 보면 어디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잘하고 있는 줄 알겠다. 워낙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어서 시작이 익숙해진 탓일까.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냥 폴짝, 하고 가볍게 하고 있다. 사람 간의 만남도 한때는 ‘취업도 못 했는데 누굴 만나 내가. 취업하고 나서 멋있을 때 만나야지’라고 생각하곤 미뤘다. 그러나 지금은 ‘예 아직 백수지만 당신과 관계된 강철경입니다.’라며 인사를 드린다. 내가 바로 당신의 지인!


사람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가 충전되는 외향인, 방전되는 내향인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 있으면 생각이 매몰되고 고여버리기 때문이다.

살이 너무 쪄서 PT를 등록했다. 아침마다 코치 선생님과 함께 하며 쉬는 시간에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첫 시간에 코치 선생님께서 이런 질문을 하셨다.

“그럼 취준 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이 질문은 오래 취업준비를 한 나를 굉장히 치명적으로 쪼그라들게 만든다. 그때도 여전히,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면서 더듬더듬 기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바로 그래도 인턴 했고, 어떤 일도 했고, 라면서 변명을 준비했다. 하지만 코치 선생님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대답을 하셨다.

“그럼 그 기간 동안 살이 찐 거예요?”

그렇다. 선생님에겐 그냥 그 기간은 ‘이 회원이 살이 얼마만큼 오래 쪘는지, 앞으로 어떻게 남은 기간 동안 빼도록 만들 것인지’를 측정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내 정체성은 오래된 취준생 하나로 여겼었는데, 누군가에겐 알 바 없는 사실이고, 다른 정체성(살이 오래 쪄서 맨날 나오게 재촉해야 하는 회원이라던가)이 있었다. 코치님과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나를 그냥 한심한 사람으로 만들 뻔했다. 한심한 건 사실이지만, 든 면에서 한심하기만 한 건 아니니까.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매몰된 생각을 깨뜨리는 건, 물이 고여있는 바구니에 구멍을 뚫는 것과 비슷하다. 상황상 그게 나 자신밖에 없을 경우, 일단 글로 적기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된 후에 다시 읽으면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갖고 조급해하고 있었는지가 금방 보인다. 바로 다른 생각으로 전환될 수는 없어도, 내 생각이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는 사실이라도 알면 된다. 함께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과 구석에 처박혀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는 건 확연히 다르다. 구석에 있는 게 행복하다면 굳이 나올 필요는 없지만, 괴롭다면 생각을 환기시켜야 한다. 안 그래도 안 좋은 일들 내 맘과 다르게 일어나는 게 인생인데, 디폴트 값이 자책이나 자괴감이라면 너무 잔인하니까.

 

물론 이 과정은 괴롭다. 나를 압도하고 대부분의 내 뇌를 차지하는 생각인데 누군가에겐 콧방귀로도 안 먹힐 때 자존심도 상한다.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건데 별 거 아닌 취급하다니! 하지만 누군가에겐 정말 그 정도로 이상하고 신경 쓸 가치도 없는 덩어리였을 뿐이다. 그렇게 매몰된 생각과 감정을 알아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나 지인 중 상황과 상태가 좋지 않아서 너무 극단적인 생각에 달려있는 사람들에게 꼭 글을 쓰라고 한다. 스스로를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런 다이어리 말고(이건 어느 정도 회복해야 가능하니까), 그냥 생각을 감정을 어딘가에 떨어트리라고. 뱉어내라고. 그 생각을 내 뇌 안에서 말고 밖에서 시신경을 통해 어떤 물체로 볼 수 있게끔. 내가 너무 한 프레임에서만 본 건 아닐지, 그 프레임을 내려놓고 마주하면 생각보다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도 있지만. 모든 개선은 눈앞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프레임 안의 화면만 보고 걷다가는 눈 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지도 모른다. 옆의 고양이가 있는데 지나쳐 버리면 아쉽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신만이 알겠지만, 그래도 앞의 시간들을 잘 보내고 싶다면 가끔은 프레임을 과감하게 off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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