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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Nov 29. 2021

우린 지금을 살아가기 때문에,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 지금도 감히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자격지심에 빠지곤 한다. 이게 다 세상에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나처럼 대학교도, 취업도, 1,2년 늦어지고 일관되고 통일된 경험이나 흥미 영역도 아닌 중구난방이 정체성인 사람은 움츠러들기 좋은 나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히 글을 쓰고 감히 이야기를 나누고 감히 사람을 만나고 감히 잘 지내는 건, 내 주변에 좋으면서 멋지고 강한 사람들이 많은 덕이다.


예전에 인턴으로 떨어진 회사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정규직 전환이 안되었던 다른 사람도) 그 회사에 최종 입사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전해준 사람도 참 악질이지만, 그 자리는 내 부서였던 데다가 결국 나만 그 회사에 없는 사람이 되어서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미 그 회사에 미련이고 뭐고 없다만, 당시 나 또한 그 자리의 면접을 제안받았었다. 하지만 나와 우리 가족에게 중요했던 건, 그곳엔 내 채용을 취소하고 나만 떨어트리고 회사를 일주일 다니게 한, 몇 번을 뒤집은 인사팀이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어머니,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결론은,

아직 회사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 누구도 을도 갑도 아니고 이건 계약 관계이므로 굽어 들어갈 필요는 없다.

였다. 그래서 나는 한때 같은 팀이자 면접을 제안했던 부장님께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부장님, 죄송합니다만 아시다시피 제가 인사팀의 번복된 결정으로 여러 번 채용 결과가 바뀌었습니다. 확실한 보장이 없으면 저는 면접 기회를 조금 더 고민해보고 연락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부장님은 그 번복은 나의 역량 부족이라고 말하며(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길래 내 역량으로 인사가 뒤집어지는지?), 취업 2년째 준비하고 있는 거 아니냐, 이제 대학생들이 취준 전선에 뛰어든다(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다 어쩌라고요)며 불편함을 드러냈고, 합격자에서 날 제외시켰다. 아마 그 자리를 다른 동기가 들어간 듯하다.


갑자기 드러난 부장님의 인성도 당황스러웠지만, 나의 대답에 대한 또래 친구들의 반응도 놀라웠다. 쓸데없이 자존심을 세웠다는 비판부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경이로운 표정까지. 흔히 MZ세대라고 하며 우린 나이로, 세대로 생각의 흐름을 나누곤 하지만 우리 가족과 그들의 선이 다른 걸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집의 모토는 언제나 당당하고 뻔뻔하고 가장 나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결정하라.이다. 정도를 지나치지 않는다면, 예의를 차려서 입장을 밝힐 수 있고(물론 우리 집은 4가지 없는 사람은 싫어하기에 표현을 다듬는데 시간을 많이 들인다.), 그곳이 나를 거절한다면 다른 곳을 찾아가면 된다.

지금 나는 인턴과, 전공과는 완전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내 전공 분야가 워낙 커서 베이스가 되고 가장 큰 역량이긴 하다. 어떤 터닝 포인트로 좋은 기회와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분야를 직접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자리는 잡지 못했지만, 내 주변 또래들이 할 수 없는 경험을, 재미있는 20대를 보내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감히 그 회사에서 탈락해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 회사를 들어갔으면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에서 괜찮은 월급을 받았겠지만 결국 사람들에 의해 나왔을 확률이 크다. (언뜻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 덕에 신이 날 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일들이 있더라) 그 스트레스를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풀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불안하다. 공백기는 애매하게 없지만 아직 무엇 하나 특출 나게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 신입의 입장이고 올해는 지나가며 나이는 20대 후반이 되어간다. 이런 불안함을 어머니에게 상의하면 취업은 됐으니 성인병 걸릴까 봐 걱정이 되므로 살이나 빼라는 답이 나온다. 그럼 또 별생각 없이 헬스장으로 간다.

우리 집은 낙관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을 산다. 이런 집에서 자라왔으니 가끔은 주변인들에게 ‘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곤 한다. 과거도 미래도 내 알 바는 아니고 지금의 나만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왜 안되었는지를 생각하기보단, 지금 어떻게 할 수 있을지만 생각한다.

그래서 오랜 취업준비생인 나는, 그런 자식을 둔 우리 부모님은, 아깝게 떨어진 과거도, 앞으로 잘 될지 모르는 미래도 관심 없다. 지금 분야를 바꾸면서 새로운 공부를 하고 건강을 위해서 헬스를 해야 하는 나만 있을 뿐이다. 지금의 재정과 지금의 건강상태, 지금 우리의 관계에만 미련하게 충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뭣 같은 상황에서도 콧방귀를 뀌며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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