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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16. 2021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 순간 나는 멈췄다.

남들만큼만 하고 싶었다. 고생은 덜하고 싶었다.

for us가 맞는 문법입니다. 이게 4년제 대학 나온 사람의 실력입니다 거참.

최근에 왜 취업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다. 당연스럽게도 준비된 답을 했다. 나도 말하면서 삐걱거리는, 그렇지만 남들이 듣기에도 꽤 납득할만한 답이었다. 뭔가 익숙하네, 싶었더니 졸업 전 딱 이 시기, 2년 전 지금 아는 선생님도 내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하셨다. 그때도 굉장히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괜찮을만한 답을 바로 했다.

그런데 질문의 핵심은 따로 있었다.


왜 고시도 아니고, 창업도 아니고, 공기업도 아닌 사기업 취업인가요?


이 답은 아이러니하게도 운동을 하다가 깨달았다. 갑자기 살이 쪄버린 만큼 짧은 시간 내에 감량해야 하는데, 운동을 제대로 했지만, 매일 나갔지만 나는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 전보다 더 잘 먹었다. 간식을 먹었다기보다는, 무거운 음식들을 단백질 핑계로 먹었다. ‘운동 그렇게 하는데 식단까지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렇게까지 해야 했다.


왜 고시도 아니고 : 고시나 공시는 컷이 정해져 있고 수능보다 더 미친 듯이 공부해야 하니까.

창업도 아니고 : 1부터 100까지 다 나 혼자 뛰고 아이디어도 내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해?

공기업도 아니고 : 그 많은 자격증, 어려운 ncs, 언제 다 공부해?

사기업인가요? : 눈을 낮출 수 있으니까. 위의 예시처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철경아 넌 지금 취업이 문제가 아니야.


생일에 들은 엄마의 목소리가 에코 효과를 넣은 bgm처럼 울려 퍼졌다. 느긋하게 러닝을 하면서 이상한 깨달음을 얻은 회원을 보고 코치님은 조용히 웃으며 속도를 올려주고 가셨다. 그래서 당시에는 여기까지만 생각이 전개되었다.

결국 나의 모든 한계는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의문을 품는 순간 정해졌다.

물론 나라고 삶의 모든 순간을 대충 재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미친 듯이 달려갔던 순간들은 여전히 내게 큰 자산이다. 중학생 때 마지막 수학 시험을 10점을 받고 고등학교 첫 시험 때 100점을 맞으며 전교권을 유지하기 위해 눈을 밟으며 도서관 언덕을 올라가던 그 풍경은 참 시렸다. 아무도 못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만든 설계도면을 들고 을지로 부품 상가를 전부 돌아다녀서 끝내 설계를 실현하여 대표 학생 이름에 내 이름을 적던 그 지면의 까슬함을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디지털 시대에 왠 서면 사인인가. 생일에 졸업 전시 대회가 열려 1등을 하고 생일이라는 이유로 팀원들에게 받았던 하나밖에 없던 그 파란색 상장은 무거워서 케이크랑 같이 들고 가다가 넘어졌다. 원하는 데이터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 엑셀의 e도 모르던 내가 그 전 수식들을 전부 들춰서 결국 만들어낸 정렬된 시트들은 아직도 참고하고 있다.


이 순간들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의문을 내가 나에게 하지 않고 남들이 나에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해야 해’라는 완성된 문장도 머릿속에 없었다. 그냥 했다. 몰입이었다. 그냥, 정말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그런 몰입의 순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꽤 최근에 결국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므로. 어떻게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의문을 지고 나아가야만 한다. 몰입의 신이 오지 않아도 몰입해서 끊임없이 어수선한 마음을 갖고 결국 해야 한다.


공채가 수시채용으로 바뀌는 장면은 내게 시간이나 마감이란 결국 인위적임을 알려주었다. 굳이 내년부터, 지금이 연말이니까, 올해까지, 앞자리가 바뀌는 그날까지, 정하지 않고 지금부터 하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이유는 없다.


취업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항상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게 나의 한계이자,   기간이 내게  숙제였다. 이건 다이어트에도, 지금 하는 일에도,  콘텐츠에도,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결국 드러날 나의  결점이다. 결국 “남들은 저렇게까지는 안 하는 것 같은데”였다. 남들보다 덜했음 덜했지 더 하고 싶진 않았다. 내 무능력 같았으니까.

성실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어렸을 때 나를 싫어하던 친척 어른에게 비웃음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 ‘이렇게까지’해야 하냐는 말이 트라우마가 된 듯하다. 맨날 수업시간에 자고 선생님께 미움을 받았지만 끝내 SKY를 간 그 친구가 그렇게 멋져 보였다. 지금도, 부럽다. 이젠 내가 그렇게 될 순 없음을 알아서 그다지 멋져 보이진 않다.

지금부터는 내 인생에서 가장 미친 듯이 산 기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언제까지인지도 모르고 중간에 무리해서 잠시 고꾸라지게 되고, 기가 죽을 수도 있지만. 그러면 쉬고 다시 가면 된다. 나는 20년 넘게 살아가기로 했고 그중 몇 년 미친척하고 살아도 나쁘지 않다.


야,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이젠 답하지 않고 한번 재수 없게 웃고 그렇게까지 하려고 한다.  질문을  사람이 나라면 더 크게 웃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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