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없다. 그 착각으로 나는 몇년 아니 십몇년을 살아왔다. 갈 곳이 없다보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에 더 절망해왔을지도 모른다. 그건 결국 자신의 현실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봤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현실과 현재를 살아갈 대상이 아니라 도망치고 당장 빠져나와야 할 상황으로 생각했기 때문일것이다.
정정한다, 마음에 안 들어서 라는 표현을 정정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끔찍하고 그 상황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었기에 그 곳으로 돌아가서는 안되었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보면서, 굳이 돌아갈 표를 예매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보았자 모든것이 망쳐진 내 상황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런 내가 느긋하게 있다가 돌아갈 표를 예매를 했는데, 딱히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있을 곳이 없어서였다. 뭐 여행 에세이를 보면 긴 여행을 가면서 갑자기 자유나 꿈에 부풀어서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야!
내가 할 일을 찾았어!
이러던데 나는 그러진 못했다. 그냥 돈이 다 떨어져서 돌아가야만 했다. 어디 멋진 해외여행지도 아니고 그냥 안목해변을 계속 걷다가 눈보라에 길을 잃기도 했다. 그쯤 되니까 우리 동네의 따뜻한 카페의 차가운 라테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뿐이었다. 그 모든 곳에서 멋진 카페와 비싼 커피들을 마셔보았지만 어디서도 나는 익숙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 젠장 거기가 돌아갈 곳이었다.
그 곳에서 다시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까지, 전공과 졸업 프로젝트 1등이라는 명예에 얽매이지 않기까지 1년이 걸렸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다. 일…이라고 해야할까? 집에서 하고 있어서 이젠 여기가 출근이자 퇴근이자 요리도 하고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는 복잡한 공간이 되어버렸다. 막연히 탈출해야 할 곳에서 많은 의미가 부여가 되어버린 것이다.
4대 보험을 받는 사람이 되면 뭔가 드라마틱하게 변할 줄 알았는데 그건 딱히 아니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내가 벗어나고 싶던 공간과 시간이 맞나? 가끔 점심을 먹으면서 별로 아니 거의 아니 그냥 안 변하는 풍경들을 보면서 내가 시도하던 방탈출은 대체 뭐였지, 하는 생각을 한다.
소속이 없던 우리는 소속을 찾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지만, 그 소속이 아닌 다른 곳은 ‘곳’이라는 이름조차 붙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도망쳐온 곳이 돌아갈 곳이고 결국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거야. 그러니까 돌아와. 다시 하자. 어차피 거기서 시작하게 된다. 당신의 다음 있을 곳은 꿈만큼 화려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나처럼 코로나가 심한 지역에서는 그냥 바로 재택이나 노마드로 살면서 결국 그 곳에서 일을 할 뿐 입장만 바뀔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디에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일단 나는 어디든 갈 순은 없었다. 그러나 당신과 나는 우리는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고, 지금 있는 곳이 돌아갈 곳이다. 돌아갈 곳은 직접 만들어내면 된다. 의미를 쓸데없이 부여하자. 정신승리를 하자. 우리가 살아있기만 한다면야, 결국 돌아갈 곳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